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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마서(31)-형제를 비판하지 말라(롬 14:1-12)
힘찬 발걸음
2012. 10. 27. 04:52
로마서(31)-형제를 비판하지 말라(롬 14:1-12)
로마서에서는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이 두 번 나옵니다. 로마서 2장과 로마서 14장입니다. 두 교훈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점에서는 그 의미가 같지만 구체적인 내용 면에서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2장에서는 유대인들을 향한 교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의 관점에서 헬라인들, 이방인들을 부정하다고 판단하고 무시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것을 버리라는 교훈이었습니다.
그런데 14장에서는 이방인들을 향한 교훈이었습니다.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율법에 매여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유대인들을 일컬어 믿음이 연약한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핵심은 교회 안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으면 그를 업신여기거나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아들이고 비판하지 말라.
(롬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믿음이 연약한 자란 모든 음식을 먹을 만한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여전히 율법에 매여 음식을 가려서 먹었습니다. 특히 로마 시장에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에게 바쳐졌던 제물들이 판매용 음식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음식들을 절대로 입에 대지 않고, 정결한 채소만을 구해서 먹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굳게 서지 못한 데서 오는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구약의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은 음식 규정에 대하여 이런 교훈을 준 바가 있었습니다.
(고전6: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이런 말씀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율법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헬라인들에게 믿음이 연약한 유대인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그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음식 규정이나 안식일 규정 때문에 고민하고 믿음이 연약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교회 안에도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반드시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성도들일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아직 바람직하지 못한 육체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술과 담배입니다. 지나친 취미 생활입니다. 낚시, 골프, 등산, 축구 등입니다. 이런 것들이 나쁜 취미가 아닙니다. 다만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보다, 예배드리는 시간보다 우선순위가 앞서기 시작할 때 이것들은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이든지 간에 아직 육체의 습관과 지나친 취미생활을 우선순위에 맞게 잘 정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성도를 옆에서 보았을 때 그를 비난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연약한 믿음일지라도 받으셨고 세우시기 때문에 비판하면 안 됩니다.
(롬14: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자유롭게 먹는 헬라인들은 유대인들을 어리석다고 업신여겼습니다. 자유롭게 먹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역시 헬라인들은 부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서로 비난하고 비판하지만 정작 딱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헬라인들에게 권면합니다. “헬라인들이여 믿음이 연약한 유대인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하나님은 믿음이 연약할지라도 저들을 이미 받으셨다.”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것은 비록 유대인들이 아직도 율법대로 음식을 먹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저들을 받으셨기 때문에 저들을 마침내 견고히 세우신다고 했습니다.
(롬14: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이요 종은 믿음이 견고한 자와 연약한 자 모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종의 신분으로서 어찌 서로 판단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굳게 서든지 아니면 연약해서 넘어지든지 그 판단은 오직 주인 되신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지금은 연약할지라도 하나님은 연약한 자들을 굳게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지난주에 소천한 저의 친척을 통해서도 이 말씀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간암 말기 암을 선고 받기 전에는 정말 믿음이 연약한 자였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와 여동생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신앙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기 암 선고를 받고 나서 이 분의 신앙이 변화되었습니다. 연약한 믿음에서 견고한 믿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분의 병을 고쳐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겨진 짧은 시간들을 견고한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병문안 온 친구들을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소천하기 전 주에 한 친구가 교회에 나갔고, 장례를 마친 그 날 한 친구가 교회에 나갔습니다. 죄 짓는 데 주로 사용했던 자신의 신체를 이제는 의로운 일에 사용하기 위해서 안구를 기증하였고 시신은 대학병원에 실습용으로 기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견고하게 서 있습니까? 그러면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주의할 것은 내가 견고히 섰다고 해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판단하지 말고 그들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2)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때문에 비판하면 안 됩니다.
(롬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우리가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 각 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 날에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기가 살아온 인생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직접 보고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를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내가 이 땅에 살 때 내가 남보다 더 나은 줄 알고 남을 숱하게 판단하고 비판했는데 막상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을 낱낱이 보고하다 보니 내가 결코 나을 게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창피스럽고 부끄럽겠습니까?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이것입니다.
(마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내가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게 잣대를 대고 판단했던 그 말들이 이제는 나를 엄격하게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은 내가 남에게 한 대로 나를 엄격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나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했다면 하나님은 내가 한 대로 나를 관대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심판은 천국과 지옥을 결정짓는 심판이 아니요 우리의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시는 심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남에게 엄격하게 판단하고 비판했다면 심판 날에 주님 앞에서 받을 상급이 적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10년 동안 다녔습니다. 그 사이에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으나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다윗이 마음속에 사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기회가 왔을 때 주저 없이 칼을 휘둘렀을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이 연약한 사울 왕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오히려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훗날 왕이 된 후로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하여 간음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관대한 용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또한 다윗이 교만해져서 인구조사를 하였을 때에도 세 가지 징계 가운데 하나를 다윗이 선택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다윗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관대한 처분을 받는 은혜를 입었던 대표적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내 형제를 향해서 엄격한 판단을 내린다면 하나님은 내게도 엄격한 판단의 기준을 적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판단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가 각 자가 주를 위한 삶을 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나요?
(롬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로마 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헬라인들은 음식 문제와 안식일 문제를 가지고 서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업신여겼습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과 헬라인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고 양쪽 모두를 향하여 교훈합니다. 각자가 자기 믿음의 분량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각각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 마음의 중심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즉 주를 위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아직도 음식과 안식일 규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주를 위하는 마음이 주께 감사드리는 마음의 발로라는 것입니다. 또한 헬라인들도 주를 위하는 마음과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모든 음식을 거리끼지 않고 먹으며 모든 날을 귀히 여기고 매일 예배드리는 삶에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양쪽 모두 주를 위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이 같으니 서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각자의 믿음의 위치에서 주를 위해서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믿음이 견곤하게 섰던 헬라인들에게 권면합니다. 유대인들이 아직 믿음이 연약에서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을 비판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유대인처럼 더 이상 음식 문제나 안식일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있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직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거나 끊을 생각이 없는 분이 있습니다. 옆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 담배 냄새가 나고, 어떤 분은 예배가 끝나면 화장실에 가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분도 계십니다. 또한 주일에 결혼식장에 가거나 집안일이나 취미생활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않고 집을 나서는 분도 계십니다. 또한 어떤 분은 아직도 재정적으로 헌신하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아직 믿음이 연약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주를 위하는 마음이 있고, 주께 감사드리는 마음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서로 판단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다만 각 자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생각하고 주를 위해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하나님은 지금 당장은 믿음이 연약한 자일지라도 결국 그를 견고한 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연약한 자나 이미 견고한 자나 할 것 없이 우리 각 사람이 힘써야 할 삶의 자세는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내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기 원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입술의 고백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1. 교회 안에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비판하지 말라.
2.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도 받으시고 마침내 견고히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다만 각 자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있으니 묵묵히 주를 위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행여 내 안에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향한 판단이나 비판이 있었다면 오늘부터 완전히 소탕해버리고 오직 내 자신이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로마서에서는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이 두 번 나옵니다. 로마서 2장과 로마서 14장입니다. 두 교훈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점에서는 그 의미가 같지만 구체적인 내용 면에서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2장에서는 유대인들을 향한 교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의 관점에서 헬라인들, 이방인들을 부정하다고 판단하고 무시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것을 버리라는 교훈이었습니다.
그런데 14장에서는 이방인들을 향한 교훈이었습니다.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율법에 매여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유대인들을 일컬어 믿음이 연약한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핵심은 교회 안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으면 그를 업신여기거나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아들이고 비판하지 말라.
(롬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믿음이 연약한 자란 모든 음식을 먹을 만한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여전히 율법에 매여 음식을 가려서 먹었습니다. 특히 로마 시장에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에게 바쳐졌던 제물들이 판매용 음식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음식들을 절대로 입에 대지 않고, 정결한 채소만을 구해서 먹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굳게 서지 못한 데서 오는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구약의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은 음식 규정에 대하여 이런 교훈을 준 바가 있었습니다.
(고전6: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이런 말씀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율법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헬라인들에게 믿음이 연약한 유대인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그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음식 규정이나 안식일 규정 때문에 고민하고 믿음이 연약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교회 안에도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반드시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성도들일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아직 바람직하지 못한 육체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술과 담배입니다. 지나친 취미 생활입니다. 낚시, 골프, 등산, 축구 등입니다. 이런 것들이 나쁜 취미가 아닙니다. 다만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보다, 예배드리는 시간보다 우선순위가 앞서기 시작할 때 이것들은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이든지 간에 아직 육체의 습관과 지나친 취미생활을 우선순위에 맞게 잘 정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성도를 옆에서 보았을 때 그를 비난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연약한 믿음일지라도 받으셨고 세우시기 때문에 비판하면 안 됩니다.
(롬14: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자유롭게 먹는 헬라인들은 유대인들을 어리석다고 업신여겼습니다. 자유롭게 먹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역시 헬라인들은 부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서로 비난하고 비판하지만 정작 딱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헬라인들에게 권면합니다. “헬라인들이여 믿음이 연약한 유대인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하나님은 믿음이 연약할지라도 저들을 이미 받으셨다.”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것은 비록 유대인들이 아직도 율법대로 음식을 먹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저들을 받으셨기 때문에 저들을 마침내 견고히 세우신다고 했습니다.
(롬14: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이요 종은 믿음이 견고한 자와 연약한 자 모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종의 신분으로서 어찌 서로 판단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굳게 서든지 아니면 연약해서 넘어지든지 그 판단은 오직 주인 되신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지금은 연약할지라도 하나님은 연약한 자들을 굳게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지난주에 소천한 저의 친척을 통해서도 이 말씀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간암 말기 암을 선고 받기 전에는 정말 믿음이 연약한 자였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와 여동생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신앙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기 암 선고를 받고 나서 이 분의 신앙이 변화되었습니다. 연약한 믿음에서 견고한 믿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분의 병을 고쳐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겨진 짧은 시간들을 견고한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병문안 온 친구들을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소천하기 전 주에 한 친구가 교회에 나갔고, 장례를 마친 그 날 한 친구가 교회에 나갔습니다. 죄 짓는 데 주로 사용했던 자신의 신체를 이제는 의로운 일에 사용하기 위해서 안구를 기증하였고 시신은 대학병원에 실습용으로 기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견고하게 서 있습니까? 그러면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주의할 것은 내가 견고히 섰다고 해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판단하지 말고 그들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2)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때문에 비판하면 안 됩니다.
(롬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우리가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 각 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 날에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기가 살아온 인생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직접 보고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를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내가 이 땅에 살 때 내가 남보다 더 나은 줄 알고 남을 숱하게 판단하고 비판했는데 막상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을 낱낱이 보고하다 보니 내가 결코 나을 게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창피스럽고 부끄럽겠습니까?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이것입니다.
(마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내가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게 잣대를 대고 판단했던 그 말들이 이제는 나를 엄격하게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은 내가 남에게 한 대로 나를 엄격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나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했다면 하나님은 내가 한 대로 나를 관대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심판은 천국과 지옥을 결정짓는 심판이 아니요 우리의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시는 심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남에게 엄격하게 판단하고 비판했다면 심판 날에 주님 앞에서 받을 상급이 적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10년 동안 다녔습니다. 그 사이에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으나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다윗이 마음속에 사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기회가 왔을 때 주저 없이 칼을 휘둘렀을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이 연약한 사울 왕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오히려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훗날 왕이 된 후로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하여 간음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관대한 용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또한 다윗이 교만해져서 인구조사를 하였을 때에도 세 가지 징계 가운데 하나를 다윗이 선택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다윗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관대한 처분을 받는 은혜를 입었던 대표적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내 형제를 향해서 엄격한 판단을 내린다면 하나님은 내게도 엄격한 판단의 기준을 적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판단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가 각 자가 주를 위한 삶을 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나요?
(롬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로마 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헬라인들은 음식 문제와 안식일 문제를 가지고 서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업신여겼습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과 헬라인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고 양쪽 모두를 향하여 교훈합니다. 각자가 자기 믿음의 분량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각각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 마음의 중심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즉 주를 위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아직도 음식과 안식일 규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주를 위하는 마음이 주께 감사드리는 마음의 발로라는 것입니다. 또한 헬라인들도 주를 위하는 마음과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모든 음식을 거리끼지 않고 먹으며 모든 날을 귀히 여기고 매일 예배드리는 삶에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양쪽 모두 주를 위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이 같으니 서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각자의 믿음의 위치에서 주를 위해서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믿음이 견곤하게 섰던 헬라인들에게 권면합니다. 유대인들이 아직 믿음이 연약에서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을 비판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유대인처럼 더 이상 음식 문제나 안식일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있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직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거나 끊을 생각이 없는 분이 있습니다. 옆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 담배 냄새가 나고, 어떤 분은 예배가 끝나면 화장실에 가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분도 계십니다. 또한 주일에 결혼식장에 가거나 집안일이나 취미생활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않고 집을 나서는 분도 계십니다. 또한 어떤 분은 아직도 재정적으로 헌신하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아직 믿음이 연약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주를 위하는 마음이 있고, 주께 감사드리는 마음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서로 판단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다만 각 자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생각하고 주를 위해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하나님은 지금 당장은 믿음이 연약한 자일지라도 결국 그를 견고한 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연약한 자나 이미 견고한 자나 할 것 없이 우리 각 사람이 힘써야 할 삶의 자세는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내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기 원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입술의 고백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1. 교회 안에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비판하지 말라.
2.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도 받으시고 마침내 견고히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다만 각 자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있으니 묵묵히 주를 위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행여 내 안에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향한 판단이나 비판이 있었다면 오늘부터 완전히 소탕해버리고 오직 내 자신이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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