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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람 말,마귀 말,주의 말씀 분별하라.

힘찬 발걸음 2011. 12. 31. 07:09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사람 말,마귀 말,주의 말씀 분별하라.

글/김병덕 목사


욥기8:1-7절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좋은 것이 좋습니다.

특히 듣기에 좋은 말이라면 그것이 성경적인지 아니면 진리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 지금 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고 성경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안다면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진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인 생각에도 못 미치는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분별이 되는 것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분별이 안 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까지 하고 종교라는 것이 참 무섭다는 생각밖에는 안 듭니다.

 
이성의 사고를 가지고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주 이상하게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그런 것이 오히려 세상에서는 반감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 참 좋은 말 같지만 사실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종교가 그것을 주장하지 않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자기들에게 오면 복을 받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복을 받기 위해서 종교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종교인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믿어도 복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복 보다는 고난이 따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인내가 필요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보는 관점이 달라야 합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그림자로서 보아야 하고 신약은 이제 실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구약과 신약 사이에서 엄청난 혼동을 하고 있습니다. 신약을 그림자로 보고 또 구약을 실체로 보고 그대로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림자를 실체로 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엄청난 오류를 가져올 수 있고 사실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실체는 나무 인데 그림자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우리가 보는 그림자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 그림자를 보면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전혀 분별을 하지 못하게 되고 나무를 사람이라고 하는 커다란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신약은 비유로 많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은 그림자로 많이 되어 있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성경 자체가 그냥 우리가 책을 읽는 것 같이 읽어서 알 수 있기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을 해야 합니다. 나무에서 비춰진 그림자가 사람이라고 보이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문자로 기록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 뒤에 비춰져 있는 실체 나무를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고 신비주의, 기복주의, 경건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여러분의 눈이 바뀌어야 하고 또 성경을 보는 생각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그 안에 있는 실체를 본다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어느 목사를 만났습니다.

자기가 성경을 이백 독을 했다고 해서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바로 이어서 자기가 속독을 해서 한 이틀이면 성경 한권을 다 읽는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백 독이 아니라 천 독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론 때로는 그런 속독도 필요하겠지만 하지만 그렇게 읽어서 성경에서 어떻게 실체를 보고 또 비유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땀을 흘리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도 농부가 봄부터 가을까지 수고를 해야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는 것 같이 역시 성경도 그렇게 보아야 내가 진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읽는다 해도 진리를 모두가 알 수 있는 것이 또한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혜를 내가 구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는 이 세상과 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편적인 것이 다르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농부가 수고를 해야 가을에 많은 수확을 거두는 것은 보편적인 것입니다 이런 일은 자연의 이치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나 진리는 다릅니다. 이 세상의 지식과는 정 반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보편적인 세상의 이치가 적용이 되지만 구원에 있어서만은 그런 보편적인 이치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은 죄를 지면 그 지은 사람이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누가 대신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다 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대신해서 받을 수 없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그가 살인을 했으면 재판을 받고 그가 살인에 대한 죄 값을 분명히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죄인이라서 자기들이 말하고 있는 내세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물론 육신적으로 처벌을 받는 것은 역시 같습니다. 그러나 그 죄로 인하여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가 대신 죄를 지고 가심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음으로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듣기에는 너무도 어이가 없는 이야기 이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입니다

 
누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죄는 내가 지었는데 그 죄를 다른 사람이 대신 지고 감으로서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려지게 됩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의 생각에는 죄를 지면 자기가 믿는 신이든 누구든 간에 분명히 그 죄에 대해서 징벌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잘못을 하면 금세 하나님께서 그 잘못에 대해서 보응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한 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103편10절을 보면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물론 구약에서 죄악에 따라 금세 처치를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 경계를 하시고 또 그 결과에 대해서 하나의 시범케이스로 보여 주신 것이지 만약 우리가 죄를 짓는 대로 처리를 하신다면 우리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처치를 안 받을 정도로 깨끗하게 살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면 그는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사는 것이 죄 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따라 그대로 갚아 주신다면 우리가 과연 한 시도 편안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아니 지구는 벌써 종말이 오고 말았을 것입니다 내가 죄를 안 짓고 또 악을 별로 안행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사람은 아직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않으시니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숨을 쉬는 것 살아가는 자체가 죄고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기가 조금 행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죄를 지면 금세 징계를 하신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징계를 안 받으니까 자기가 죄악을 안행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더 큰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십일조를 안 내니까 다른 것으로 그 돈이 빠져 나가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쪼잔 한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을 이 세상 사람들이 믿는 잡신보다도 더 못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주장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믿음대로 그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복을 못받아도 성도라면 감사히 드려야 할 헌금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렇게 하면 복을 주신다고 말씀으로 약속하셨습니다. 복받고 싶으면 그대로하면 됩니다. 잘못된 사상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만듭니다. 제가 죄를 마음 놓고 지어도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죄를 따라 우리에게 갚으신다면 우리의 심장과 폐부까지도 감찰하시는 분이신대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까지 다 알고 계시는 분인데 과연 내가 한시라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마 그대로 다 갚아 주신다면 우리는 견디지를 못할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그대로 보응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짓는 죄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정말 오래 참으시고 또 그대로 갚아 주시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고 이 세상의 사상에 미혹이 되어 있으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하다는 것을 인지하시고 오직 성경을 바로 아는데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욥기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욥이 왜 징계를 받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으면서 욥기를 읽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육적인 것으로 징계를 받은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문제로 징계를 받았는가 모르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욥에 대한 복음의 말씀에 올려진 설교를 보시면 됩니다. 욥이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참혹할 정도로 징계를 받고 있어서 세 친구가 와서 위로를 하다가 이제 왜 징계를 받고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욥은 자기가 율법적으로는 징계를 받을 만한 허물을 발견하지 못하겠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세 친구는 그런 욥을 보면서 네가 인생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며 그럼 하나님께서 까닭 없이 너에게 이런 징계를 내리셨겠느냐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욥의 강변에 친구가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 욥은 나는 왜 이런 징계가 찾아왔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는 자기 자녀들이 생일 때 죄를 지었을까봐 생일이 끝나면 제사를 드릴 정도로 철저하게 이 세상을 산 사람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으로부터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다는 말씀을 들을 정도면 욥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욥을 보고 수아 사람 빌닷이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입니다 “언제까지 그런 투로 말하려는가? 자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치 바람 같네 그려.”

 
욥의 말이 얼마나 허망하게 들렸으면 이렇게 까지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욥이 자기의 의를 주장하니까 당연히 누구라도 네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흠 없이 살 수 있겠느냐고 책망을 하게 되고 네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을 보면서도 언제까지 그렇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입니다 이 세상은 분명히 잘못을 했으니까 그 징계를 받았다고 네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징계를 하셨지 그냥 심심해서 하겠느냐고 말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교인들과 같은 생각입니다.

욥과 같이 징계를 받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모르지만 저가 분명히 하나님께 범죄를 했기 때문에 저런 징계를 받고 있다고 대 놓고는 안 해도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인생인 잘못을 하면 반드시 바로 징계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기 행위에 대해서 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이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도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은 어떠하느냐면 욥이 뭔가 모르게 율법적으로 잘못을 했기 때문에 징계를 하시는 것이지 까닭 없이 그냥 욥이 괴롭게 하실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욥이 율법적으로 잘못을 해서 징계를 받고 있습니까? 욥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율법적으로 완전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욥보다 더 의롭게 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욥이 지금 징계를 받고 있다면 과연 이 징계가 율법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견디지를 못하게 될 것입니다 거의 인생으로서는 흠이 없을 정도로 의롭게 산 욥이 이렇게 징계를 바로 받는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욥이 나중에 무슨 말을 합니까?

자기가 무슨 잘못이 있는지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고 싶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할 정도라면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욥의 징계는 결코 율법적인 문제의 징계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로 징계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욥기를 바로 이해를 하게 되면 욥의 징계는 영적인 문제로 인하여 받는 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욥도 그렇고 욥의 말에 질책을 하는 친구도 그렇고 욥이 징계를 받는 것이 율법적인 문제로 징계를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욥이 나는 왜 이런 징계를 받는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그 친구가 하나님께서 까닭 없이 너에게 이런 징계를 내리셨겠는가 하면서 네가 하나님을 판단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어찌 하나님의 공의가 굽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사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 징계를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거의 다 율법적인 문제로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상담을 하는 사람들도 역시 그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잘 생각해 보고 회개를 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를 전혀 못 보고 있습니다. 욥이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은 육적인 문제가 아닌데도 욥도 그렇고 그 친구들도 율법적인 문제로 보고 있고 그러면서 하나님이 네가 율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징계를 하시겠느냐면서 하나님께서 공의를 굽게 하시겠느냐면 오히려 욥에게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가 아닙니까? 지금 이런 생각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이 나고 또 내 교회가 그렇지 않은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징계를 육적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육적인 문제로 징계를 하신다면 우리는 한 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이 수앗 사람과 같이 주장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자녀들이 죽었습니다. 당연히 그 자녀들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죄의 문제로 그 자녀들이 죽었다면 이 세상에는 단 한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이 생각입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이렇게 세상 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과 같이 율법적인 사고에 사로 잡혀 있으면서도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 생각이 세상적인 생각이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에 따라 우리를 처치하십니까?

죄의 문제로 우리를 징계하신다면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죄에 따라서는 이 세상의 법과 관습에 따라서 바로 처치를 하시기도 하지만 욥과 같이 드러나지 않는 죄에 대해서 바로 처치를 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한 시도 마음 편하게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물론 사망은 죄로부터 찾아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 죄를 안 진 사람이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죄로 인하여 바로 징계를 하신다면 우리는 벌써 사망했을 것이고 우리 부모가 우리를 이 세상에서 태어나게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하여 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못 믿습니다.

그리고 무슨 죄만 지으면 그 죄에 따라서 자기가 어떤 처치를 받을까 고민을 하고 있고 또 죄를 짓고 나서 무슨 일이 있으면 그것이 죄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세상적인 생각이고 초보적인 생각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도 똑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이 수아 사람 빌닷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사상은 이 세상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수아 사람 빌닷의 말은 절대로 성경적이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교회 안에는 이런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누군가 징계를 당하고 있으면 그런 것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억지로 회개를 하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징계를 당하는 사람에게 회개를 하라고 하면 당연히 모두가 죄가 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죄로 인하여 징계를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고 그것이 스스로를 율법주의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미혹이 되고 있고 그렇게 강요들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징계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 징계를 죄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부지런히 구하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내가 의롭게 되면 형통을 합니까? 하나님께 내 죄를 빌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비 진리적이고 세상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바로 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복을 내려 주십니까? 제가 죄를 마음 놓고 져도 된다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바른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바로 살아도 그것은 분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바로 사느냐 악인으로 사느냐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또한 내가 하나님께 바란다 해서 되어지는 것 역시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이런 세상의 기복적인 사상에 사로잡혀서 자기가 바로 살면 마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가난한 자나 징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저에게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 또 막상 자기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그때는 아주 그런 사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을 봅니다.

 
욥이 육적으로 잘못해서 이런 징계를 받고 있습니까?

욥의 징계는 결코 육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며 이 영적인 문제를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징계를 허락하셨습니다. 욥이 얼마나 더 의롭게 살아야 합니까? 욥이 얼마나 더 하나님을 구하고 또 하나님께 빌어야 하나님께서 징계를 안 내리시겠습니까? 이미 욥은 그런 면에서는 정직하고 순전한 자라고 하나님께서 욥을 인정해 주시고 있습니다.

 
영의 문제를 육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영의 문제를 거의 이 수아 사람 빌닷과 같이 육의 문제로 보고 있고 육으로 해결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영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도 그 눈이 영의 것을 보지 못하고 있고 육의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교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말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너무도 좋아해서 글로 새겨서 집에다 사업장에다 걸어두고 있는 성경구절입니다 지금 수아 사람 빌닷이 이 말을 하기 전에 어떻게 해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이렇게 하면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구하고 있고 또 빌고 있고 자기를 청결하고 정지하게 하려고 하고 있고 그렇게 되면 나중이 심히 창대할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빌닷의 말이 맞는 말입니까?

이 말은 결코 맞는 말이 아니고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이 말은 정말 세상적인 사상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종교에서 아니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똑 같이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너무 좋아합니다.

무슨 말 때문에 좋아하느냐면 네 나중이 심히 창대하리라는 이 말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 하든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려서라도 자기 나중이 심히 창대하고 싶어서 이 말을 무조건 벽에 걸어 놓고 기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빌닷의 말은 절대로 성경적이지도 않고 또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해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이 다 하나님 말씀입니까? 마귀의 말도 있습니다. 사람의 말도 있습니다.

 
물론 욥이 나중에 심히 창대해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빌닷의 말을 따라서 창대해 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욥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가 진리를 깨닫고 난 후에 다시 육적인 복을 주신 것이고 그것은 물론 육적이지만 진리를 알고 난 후에 천국에서 누릴 복을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빌닷의 말을 따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상에 미혹이 되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복주의에 빠져 자기 영적인 문제를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육적으로 창대해 지기 위해서 하는 모든 행위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욥기42: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누구 말이 더 정당합니까?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두 친구의 말은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 친구의 말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는 이 세상의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이 한 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이 말을 너무도 좋아해서 벽에 걸어 놓고 기복을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온 말씀이 다 정당합니까? 전혀 하나님을 모르고 한 말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욥의 세 친구의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사실 하나님을 너무도 모르고 이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고 그 뜻을 알고 내가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다 좋은 말이 아닙니다. 다 육신에게는 좋은 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분명히 빌닷의 말은 적당하지 못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정당하지 못한 말을 너무도 좋아하고 있고 그 말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고 기도할 때 그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렇게 자기들 듣기에 좋은 말만 찾게 됩니다.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듣기에 좋은 말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진리가 담겨져 있는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내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또 이 세상의 복보다는 신령한 하늘의 복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http://cafe.daum.net/ilm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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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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