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수를 사랑하라’가 무슨 뜻이길래?
평양을 들락날락하는 종교인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 구절이다. 그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위대한 교훈을 실천하는 것이지 친북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소위 그들이 실천한다고 하는 교훈에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먼저 ‘원수’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정의를 찾아보고, 성경은 말씀마다 ‘수신자’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살펴본 다음, 마태복음 5장의 문맥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런 후,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그들의 친북활동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밝혀 보도록 하겠다.
이 글을 마치면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아는 우리가 어떻게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2. ‘怨讐(원수)’의 사전적 正義(정의)
먼저 ‘원수’가 무엇인지 사전적인 정의를 보고자 한다.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怨讐(원수)란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을 의미한다. 怨恨(원한)이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怨讐(원수)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이 생길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을 의미한다. 따라서 원수가 되었다는 것은 반드시 ‘자기가’ 원한이 생길 정도의 해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이것을 기억하고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자.
3. 受信者(수신자)가 있는 성경 말씀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사항 중 하나는 ‘受信者(수신자)’ 즉 그 말씀을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3:18-21을 가지고 수신자가 말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골 3:18-21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아내들아’, ‘남편들아’, ‘자녀들아’, ‘아비들아’라고 정확하게 수신자가 나와 있다. 아내들은 아내에게 하는 말을 듣고 순종하면 되고, 남편들과 자녀들과 아비들도 각자 자신에게 하는 말을 듣고 순종하면 된다. 이것이 말씀을 정확한 수신자에 올바르게 적용을 하는 것이다.
‘수신자’가 잘못 지정될 경우에 말씀의 적용도 잘못될 수가 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에서 아내가 수신자임에도 남편들이 수신자가 되어서 남편들이 아내들에게 이 말씀을 적용하도록 요구한다면, 이것은 말씀의 잘못된 적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말씀 자체가 정확히 ‘그 수신자’에게 스스로 적용될 때 그 말씀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예시로 살펴본 골로새서 말씀은 수신자가 정확하게 문자적으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성경에는 정확하게 문자적으로 지정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문맥 속에서 그 수신자를 정확하게 알 수가 있다.
4. 文脈(문맥) 속에서 意義(의의)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말씀 자체를 살펴보자. 이 말씀은 마태복음 5장 44절에의 부분적인 인용이다. 전체 절은 다음과 같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일단 이 절에서 우리는 ‘너희 원수’라 함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이 마태복음 5장 44절의 말씀이 마태복음 5장 전체의 문맥에서 어떤 의미로 기록된 것인지 알아보자. 5장 말씀은 산상수훈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특히 17절부터는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시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한 구약보다 더 높은 도덕률의 개인적인 윤리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다. 그리고 살인(5:21-26), 간음(5:27-32), 맹세(5:33-37), 보복(5:38-42), 이웃사랑(5:43-48)을 구체적인 예시로 제시하시고 있다.
23절에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5절에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41절에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와 마찬가지로 個人關係(개인관계)의 倫理(윤리) 선상에서 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어떤 집단이나 국가와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 적용해야 하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5. ‘원수를 사랑하라’의 解釋(해석)과 實際的 適用(실제적 적용)
2, 3, 4번에서 다룬 내용을 종합하여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해석해 보면, ‘원한이 생길 정도로 해를 받은 너희여, 너희 자신에게 그토록 원한을 품도록 해를 끼친 사람을 사랑하라’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북한 문제에 대해서 적용해보자.
이 말씀의 ‘수신자’는 누구인가? 북한과 관련해서 이 말씀을 적용할 수 있는 수신자는 북한의 압제자들로 인해서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마음이 응어리진 사람들이다.
중국에서 팔려 다니다가 임신한 채로 북한으로 송환되어서 강제 낙태 당한 북한 여인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수용소에서 갇혀 고문을 받고 죽어가는 북한의 그리스도인들, 25년 동안 요덕 정치범수용소 혁명화구역에 갇혀 있는 혜원과 규원 자매들, 천안호 폭침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들과 연평도 포격으로 거주지를 잃은 주민들과 같이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날마다 마음이 찢어지는 분노가 차오르는 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 말씀이 수신자가 되어 자신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원한이 있는 자가 수신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원한이 없는 우리가 수신자가 되어서 그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적용할 수 있도록 기도해 줄 수밖에 없다.)
평양을 넘나들며 북한 정권을 친북지원 하는 종교인들은 이 말씀의 수신자가 절대 될 수가 없다. 그들은 북한의 압제자들로부터 원한을 품도록 ‘자신이’ 해를 직접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씀은 ‘개인관계’에서의 윤리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 정권을 사랑하라는 것에는 더더욱 적용될 수 없다. 그들은 성경 해석에 대한 무지와 분별력 없는 감상주의 그리고 숨겨진 자신의 이익을 좇는 자아숭배를 신성한 성경의 말씀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6.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렇게 하라!
그렇다면 우리를 포함하여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잘 아는 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우리와 종교인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알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 원한을 품지 않도록 북한의 압제자들이 가하는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와 동시에, 고통 가운데 울부짖는 북한 주민 앞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절대로 주어지지 않은 우리와 종교인들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사무친 원한이 예수님 안에서 녹아내릴 수 있도록 그들을 끌어안고 먹이고 치료하고 구출하고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우리와 종교인들이 해야 할 實踐的 接近(실천적인 접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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