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12년을 기다리는 마음의 다짐
2012년을 기다리는 마음의 다짐
선교지에서 살며 때때로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판단해야 할 때, 마치 스스로 최고의 결정권자라도 되는 듯이 여기며 자신의 생각대로 결정하거나 판단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럴 때는 다른 어떤 이들의 권면이나 충고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결정과 판단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양 독단적인 행위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져든다. 오히려 자신의 과감하고 탁월함(?)을 자랑스러워하는 우월감에 스스로 도취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렇게 내려진 결정과 판단의 오류를 뒤늦게 깨달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한 순간의 잘못을 돌이키지 못한 채 여전히 반복된 독단의 결정과 판단을 벗어나지 못한다. 독단의 결과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도무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교지에서는 어떤 결정과 판단이 요청되는 일을 스스로 최고의 결정권자가 되어 독단적인 결정이나 판단을 부단히 경계하며 조심해야 한다.
선교지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일을 위해 선교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그리기 위해 선교지에서 살며 어떤 결정이나 판단이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는 스스로 어떤 결정과 판단을 내리려 하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며 정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이들로 누가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가 있으랴.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문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그 일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거나 판단하셔야 할 일을 월권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월권인지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동일한 행동을 너무 쉽게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자기의 결정이나 판단을 마치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한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이 결정되고 판단되면서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로 착각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투철한(?) 사명감 때문이다. 그 사명감이 미처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간과하게 한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질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조급한 마음이 그 때를 기다릴 수 없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직접 결정하시고 판단하시기까지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성급함이 조바심으로 나타나면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간과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많은 경우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조급함과 성급함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깨달음을 전부로 여겨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있는 데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것은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일들이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자주 일어나게 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원하신다. 그렇지만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어떤 사람에게도 독단적으로 행할 것을 명령하지 않으신다. 다른 이들과 더불어 함께 일하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하신다. 당신이 택하신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가 합력하여 일치된 마음으로 당신이 바라시는 뜻을 이루는 것을 기대하시며 기뻐하신다. 어느 누구도 독불장군이 되거나 외통이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더불어 함께 하는 동분자가 되는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두지 않으셨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 의해 통제되거나 관리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모든 사람에게 주신 각자의 서로 다른 달란트로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동반하는 어우러짐 속에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대하신다.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여 더불어 이루어지는 조화를 원하신다. 어떤 인위적으로 꾸며지는 조화가 아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어우러짐의 아름다움의 표현을 바라신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서로가 더불어 어우러짐은 질서와 양보에 의한다. 질서와 양보는 자율적인 것이지 어떤 통제와 관리에 의해 규격화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지에서는 어떤 통제와 관리가 강요되고 있다. 인위적인 조직이라는 꾸밈에 갖혀 자율권을 빼앗아 규격화된 질서와 양보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조직이란 진정한 어우러짐을 훼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어떤 목적(뜻)을 이루어지려면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거나 관리되는 일은 필연적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에 통제되거나 관리되기보다는 누군가를 통제하거나 관리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어떤 삯을 매개로 제시하며 통제하거나 관리하려고 시도한다. 삯은 때로는 명예일 수 있고, 금전적인 이익이나 세속적인 권력일 수 있다. 이런 매개를 수단으로 목적(뜻)을 이루는 일은 순조로울 것이라고 여긴다. 협력과 동반의 원동력은 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명분의 삯도 다른 사람의 진정한 협력이나 동반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삯을 매개로 협력하고 동반하려고 하는 이는 참된 협력자이거나 동반자가 아니라 삯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삯군은 삯을 주는 사람의 관리나 통제를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삯군에게서 스스로의 역량을 따라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오직 삯을 위해 받은 삯만큼의 일, 아니 그보다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일을 근근히 행할 뿐이다.
삯군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다. 그런 삯군에거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자세를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 까닭에 삯군의 협력은 위장이요, 이해타산에 맞춘 거짓된 거래일 뿐이라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삯군은 자기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하기에 그것에 반하거나 삯이 자기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더 나은 삯을 따라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즉시 떠난다. 심한 경우에는 해악을 끼치는 일도 서슴없이 행한다.
선교지에서는 삯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누가 삯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삯군은 진심으로 협력하는 동반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삯군과 함께 일하면 하는 모든 일마다 너무 고단하고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쉽게 지쳐 사역의 한계를 너무 빠르게 느끼며 허탈감에 빠져들기 쉽다.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깊은 상실감으로 무기력감에 빠져 조기에 사명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기도 한다.
사명자가 선교지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동반자를 찾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이미 함께 일할 동반자를 준비하여 대기시키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명자들은 하나님이 대기시키신 동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직 온전한 헌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코 홀로 일하게 방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대한 신실한 믿음의 결여때문이기도 하다.
왜 사명자가 온전한 헌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올바른 결정과 판단의 결여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월권적인 행위가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조용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뜻을 깨닫기 위한 느긋한 인내심이 없는 조급함과 성급함이 온전한 헌신의 장애가 되어 일어난 결과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통해 이루신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사명자를 선교지에 파송하셨고, 선교지에서 만날 동반자를 대기시키신다. 그러므로 선교지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준비하여 대기시킨 동반자를 찾는 일이다. 선교지에서 만나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준비시켜 대기시키신 이인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인내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날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겸손함과 친절함으로 대해야 한다. 그들을 섬기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우려져 더불어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음으로 어우러져 더불어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려면 만나는 모든 사람마다 저들을 진심으로 존중해야 한다. 일에 쫒기는 마음으로 어떤 이를 삯을 매개로 매수하려고 성급한 시도와 사무적인 태도를 스스로 조심하여 경계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대하되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하며, 서로의 다름을 용납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삯을 조건으로 사람을 만나고, 저를 부려 일을 시작하는 일은 아주 쉽고 효과가 빨리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된 신기루와 같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조급하거나 성급한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사역의 협력을 위한 진정한 동반자를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기까지 묵묵히 기다리며 찾아야 한다. 찾아 만나기까지 서두르지 않고 모든 만남을 인격적인 만남이 되기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한다.
동반자는 마음과 마음이 교류되는 사람이다. 마음과 마음의 교류는 일방통행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쌍방통행만이 마음과 마음이 교류될 수 있다. 이런 마음의 교류를 통해 어떤 결정과 판단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같은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 양보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하며 말씀 가운데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순종의 마음으로 서로를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가져야 한다.
마음과 마음이 교류되는 관계는 피차에 성실함이나 정직한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협력이 비로소 참된 동반을 가져올 수 있으며, 참된 동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선교지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선교지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삯군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여 대기시키신 동반자를 찾아 그와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더불어 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준비하여 대기시키신 동반자를 만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선교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도 하나님이 준비하여 대기시키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을 만나되 누가 자신의 동반자인지를 분별하는 일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로 동반자를 만나야 한다고 하지 않고 찾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가장 먼저는 선교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겸허한 마음으로 존중하는 일이다. 아무도 자신의 뜻을 따라 관리하거나 통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을 개체적인 다름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질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이를 위한 어떤 기대감으로 가득해야 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어떤 결정과 판단의 최고 결정권자가 되는 것을 조심하여 경게해야 한다. 하나님의 전적인 결정과 판단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철저하게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
2011년의 한 해도 저물어간다. 불과 열 이틀 후면 2012년의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이제 2011년을 저물어가는 오늘에 새로 시작될 2012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런지를 조용히 묵상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들을 재 점검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일을 위해 무조건 사람을 찾으려는 시도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조용히 기다리는 기다림 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2012년을 기다린다.
다가오는 2012년에는 진정 삯군을 구하지 않고 동반자를 찾는 해가 되었으면 싶다. 이미 찾은 바 되어 동반하고 있는 이들을 더욱 신뢰하며, 어떤 명분으로도 저들을 통제하거나 관리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더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을 세워가는 한 해가 되게 하기 위해 더 분발하련다. 참으로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 이 세상에 오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 받아 살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다.
지금의 세상은 극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어쩌면 그 혼란은 점점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려야 하리라.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올바르게 분별하는 것이 절실한 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모든 결정과 판단을 스스로 조급함과 성급함으로 그르치지 않기 위해 자성하련다. 묵묵히 하나님의 결정과 판단을 기다리련다. 하나님의 결정과 판단하심이 임할 때, 그것을 겸허하게 엎드려 철저하게 순종함으로 2012년을 살아갈 것을 마음 깊이 다짐한다.
2011. 12. 19 (월)
글/ 불꽃 石一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