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의도되는 종교 분쟁의 조짐들]
글쓴이 : 김종신
글을 시작하면서
먼저 제목에서 거부가 일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금번 기독인들의 이러한 예배행위는 분명히 잘 못 되었다.
그러나 잘못 되었다는 단순한 측면의 문제가 아니기에 이점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타 종교 안에서 일어난 어떤 형태로든 기독교의 신앙행위로
타 종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공식화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종교에 대해서 우상 운운하며 땅 밟기 운동이라는 슬로건은
기독교 성경 중심의 신앙이 왜곡되는 실천의 모습이다.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의 현실성을어지럽히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리석고 무지한 행동의 열정은 오히려 무너지게 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말이다.
교회 안에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종전의 이러한 신앙 교육이나 환경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사회 질서 또한 하나님은 일반은총으로 주신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기독교가 가장 먼저 선하게 임해야 한다.
이처럼 당연히 중요한 객관성의 공간에서 기독교 공식적인 신앙 행위로
다른 종교를 폄하하거나 공격하는 행위는
오히려 신앙과 교회를 왜곡되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분명히 말 할 있다.
금번 사태는 기독교 선교적 본질에서 너무 거리가 먼 극단적 종교 행위라 할 수 있겠다.
금번 봉은사를 비롯한 몇 곳에서 일어난 사태는 매우 유감스럽지만
유감스러움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문제인 것이다.
기독교적 종교행사, 예배, 우상 몰이식 동영상은 나로써도 충격이다.
선교지에서 어이없는 동영상을 접하고 당연히 좋아하고 환영해야 하는 문제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 기독교 신앙이 더욱 신실하고 순수한 열정이 가득했던 한국 사회 안
기독교 기반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얼마나 교묘한가!
기독교의 우상의 문제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시 다루는 중심적인 교리문제이다.
기독인이라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고 호응 할 수밖에 없는 핵이다.
그러한 신앙의 문제를 인터넷이라는 싸이트 공간을 통해서
기독인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지능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다른 종교와 마찰을 유도하는 장으로 끄집어내고자 한 계산이
숨어있는 행위라는 점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사회의 무질서를 낳도록 하시는 무지의 원천이 아니시다.
예수님도 교회 안에 ‘가라지’도 내버려 두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도중에 알곡이 다치게 될 것을 우려해서 였다.
또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는 슬로건을 주셨다.
이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분 된 세계임을 명확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양자의 세계의 질서를 인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이 지상에 질서를 확립하신 것이다.
우리 기독교 안에서 우상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기지만
사회적인 질서에서 종교적 마찰은 금물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 안에 일고 있는 이해 할 수 없는 이러한 움직임들에 대해서
바른 신앙관에 입각하여 오해와 분쟁의 소지들을
거두어 낼 필요를 강하게 느껴서 서술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 사회를 지향하는 파괴적 그림자를 조성하는 것임을,
구체적으로 그 정체성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금번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 미묘하게 발생하는 이 사건들을
본인은 개별적인 차원에서 움직여진 것이라 하기 이전에
세계적 조류에 초점을 맞추어서 서술하고자 한다.
비록 과학적 데이터처럼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성경과 기독교 신앙원리 안에서,
주관적 인식과 심증적 한계를 인정하면서
선지자적 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