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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신 이유?

힘찬 발걸음 2010. 10. 21. 04:43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신 이유?

요한복음 5장1-18절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요5:5-8   http://cafe.daum.net/ilmak

 

 예수님께서는 명절이 되면 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1절)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이유는 명절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명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곤 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명절이 어떤 명절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주님께서는 특별히 성전 가까이에 있는 베데스다라는 못으로 가셨습니다. 이 못 근처에는 성전에서 제물로 쓸 양들을 몰고 들어가는 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을 양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고, 거기에는 마치 종합병원처럼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병자들이 이 못가에 와 있는 이유를 본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2-4절) 천사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그것도 가끔 내려오는데 어찌 야박하게 겨우 한사람만 치료를 하였을까요? 이와 비슷한 자료가 준비되어 있으니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특히 (괄호 속에) 들어 있는 말씀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괄호 속에 들어 있는 3,4절은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미신적인 생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굳이 기록한 이유는 전체적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이 설명이 없다면 38년 된 병자가 하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4절이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미신적인 생각을 기록한 것이라면, 실제로 이 못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요?

 

 간혹 못의 물이 동했다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아마도 이 못이 간헐천(間歇泉)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헐천이란 일정한 기간을 두고 주기적으로 분출하는 온천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병이 나았다는 것은 아마도 신경통 같은 병은 낫는 수가 있었을 것이고, 심리적으로 낫는 경우도 더러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어떠한 병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 나았다는 기록이 없는것으로 보아서 많이 고치지 못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물이 동한 후에 가장 먼저 들어간 단 한 사람만 병이 낫는다는 조건으로 미루어볼 때 병이 잘 낫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인지 그리고 또 누구인지 모르는 한사람 에게만 왜 병을 낫게 했는지? 기록은 없지만 어쨌든 이런 전설이나 미신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병자들이 이 못가에 와서 대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심리는 중병에 걸리면 그병을 치료받기 위해서 무슨약이든지 치료 받을 수만 있다면 검증되지 않은 약이라도 그것을 구하기 위해 암거래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내가 그런 진단을 받았다면 혹시 나도 그랬을찌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세 번째 표적입니다.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일으켜주시는 주님의 표적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들의 삶도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는 이야기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일곱 가지 표적 중 네 가지중에 하나로 (왕의 신하의 아들 고치심, 38년 된 병자, 소경, 죽은 나사로) 육신의 문제인 병과 죽음을 해결해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서는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당시 주님이 육체를 지닌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헬라의 2원론 철학에 근거한 이단들이 있던 때에 요한은 이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는 더러운 것, 하찮은 것이라는 당시의 인식을 바로 잡아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1장은 말씀이신 주님이 육신을 가지고 오셨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모습을 요한복음의 마지막에 담고 있습니다.

 

 예수안에 있는 성도는 육신을 죄악시하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이 육신도 성령의 전이며 하나님의 일을 위한 거룩한 도구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적으로도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우리들이 매일 먹을 양식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마6:11).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살기에 육신의 필요를 채움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채우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물론 육신의 문제에만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그 일례로 오늘 본문도 14절에서는 죄의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또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떡의 문제를 해결해주신 후에 제자들에게 썩을 양식만을 위해 일하지말 것을 가르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육 간에 건강하기를 바라십니다. 영육의 균형 잡힌 건강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이 전인적인 치유를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의 영육간의 문제를 치유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말씀 가운데 주님의 치유의 은혜들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5절에 보니 그는 38년 된 병자입니다. 그는 혼자서는 걸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베데스다라는 못에서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 38년 된 병자 앞에 다가섰습니다. 주님은 말하지 않아도 그의 문제를 알고 계셨습니다(6절).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아시는 분입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시는 분입니다.

 

◆ 네가 낫고자 하느냐?

6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이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주님은 이 병자의 진정한 문제를 짚어주시는 것입니다. 너무 오래 병이 든 상태로 있다보니 이미 포기했습니다. 팔자나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희망을 잃고 있는 그에게 주님은 먼저 희망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새로운 변화의 욕구를 회복시켰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습니까? 간절히 원하시며 기도하는 일이 있으십니까? 우리에게는 변화의 열망이 필요합니다.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필요합니다.

 

 팔자 타령하고 그냥 주저앉지 마십시오. '수십 년 그렇게 살아왔으니 계속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운명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해봐야 되지 않는다'는 패배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이미 늦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변화에의 꿈이 있는지 알고 싶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지 알고 싶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 앞에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병자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마치 동문서답처럼 전개되는 본문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일어날 수도 없어 기진한 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시는 것일까? 순간 내 머리에 번쩍 스쳐가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38년 동안 자신이 의지하던 자리였습니다. 병이 낫기를 원하는 것 같았지만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이웃을 탓하면서 자기 병을 합리화하던 자리였습니다. 병에 사로잡혀 자신을 잃어버리게 했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 고리를 끊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긴 세월 병을 고침받지 못하였어도 누군가 도움을 주는 손길이 있어서 38년동안 그자리에 있있습니다.

 

◆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주님은 이 38년 된 병자에게 먼저 낫고자 하는 욕망부터 살렸습니다. 무너진 꿈, 죽어있는 소망부터 살렸습니다. 병을 못고쳐도 누군가 먹여주고 돌봐준다는 것에 안주해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이대로 살다가 죽기를 원하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이 물으신 것은 "네가 정말 낫기를 원하느냐?" 물으신 것은 "고침받으려는 의지가 있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하루 하루 언제 못물이 동할런지, 어느시간에 움직일 것인지 ,기약도 없고 매일 같은자리에 누어서 자리 싸움만 하다보니 터주대감이 되어서 지나간 시간이 38년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8,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38년 된 병자는 일어서게 됩니다. 주님 앞에서 아무리 오래된 문제,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자리로 깔고 주저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들고 일어섭시다. 우리의 과거를 깔고 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들춰 메고 일어나 미래를 향해 걸어갑시다.

 

 우리의 무릎이 펴지고 우리의 발목이 힘을 얻고 걷지 못하던 내가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오랫동안 펴보지 못한 우리들의 무릎 관절은 처음 펼 때 통증이 느껴지거나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서 걸읍시다. 많은 사람들은 병 낫기를 원합니다. 온 힘을 다하여 노력합니다. 그런데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선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영적 건강이 위협을 받을 때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랜 영적병은 고치기가 힘듭니다.  

 

◆고정관념 병이 오랜 이스라엘

그러면 요한복음이 이 표적을 통해 보여주려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뒤에서 유대인들의 안식일 논쟁이 보여주듯 너무 오래된 고정관념, 너무 오래 동안 내려온 전통이라는 병에 걸려 낫기를 희망하지도 못하는 중병 상태의 이스라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38년 동안 광야생활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틈만나면 뒤를 바라보며 이집트에서 잘먹고 고기먹고 마늘과 부추등을 먹은 것을 회상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 말씀만 먹고 살라고 만나를 주시며 일어나 앞으로 가라 명하셨습니다.

 

 9,10절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걷는 것 때문에 시비를 겁니다. 병 나은 것 때문에 기뻐하고 찬양해야 할텐데. 이런 분위기를 아시는 주님이 이스라엘 사회를 향해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질문 하신 것입니다.

 

16절에는 그렇게 변화를 추구하시는 주님을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오랜 전통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낫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던 것입니다. 병을 모르니 더 큰 문제였습니다. 주님은 답답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믿으며 변화에 대한 열망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그 전통에 안주한 채 살기를 원했습니다. 주님의 변화에 대한 시도는 이렇게 벽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뛸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한국교회는 변화하여야 합니다.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안주함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기도하는 목적을 상실하였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해야하는데 그것을 버리고 자기의 구하는 것만 하다가 끝납니다. 주님 앞에서 대답하십시오. 지도자들은 늘 주님의 뜻이라고 하는데 과연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나 압니까? 한국교회의 중병을 앓고 있는데 고치려는 것이 아니고 더 깊은데로 숨어있기를 원하며 자리를 틀고 앉아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명대로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가라"는 말씀을 듣는 교회와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안에서 고침받고 매일 새로운 삶을 살아 가게 되길 원합니다. 날마다 더 좋아지기를 원합니다. 더 활력 넘치기를 원합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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