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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 교회에 던진 일본인의 충고

힘찬 발걸음 2010. 4. 24. 02:31

한국 교회에 던진 일본인의 충고

“교통 법규부터 지키시오, 아멘!”

 
차호원

“교통 법규부터 지키시오, 아멘! 한국의 교회가 구원과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교통 법규를 지키고 공중 도덕을 지키라고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질서를 지키면 머지않아 한국은 '하나님의 역사(役事)'와도 같은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점, 질서와 공중 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관념이 없다는 점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서구(유럽)처럼 오랜 세월을 두고 시민 각자의 필요성 때문에 서서히 민주주의가 발달한 곳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오늘부터 민주주의 합시다!" 하는 식으로 외래제도가 도입된 사회에서는 한동안 혼란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혼란을 바로잡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가 강력하게 법을 집행함으로써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육을 통해 국민 스스로 도덕과 질서를 지키도록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지나치게 강제에만 의존하면 오히려 반발이 일어나거나 인권이 침해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시민의식이 성숙되기를 기다린다면 오랜 세월 동안 무질서 상태를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정부 자신부터 법과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철새처럼 시류에 따라 여기저기 떠다니는 사람일수록 높은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런 정부라면 국민에게 법과 질서를 지키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그런 소리를 백날 해 봐야 아무도 듣지 않는다. 교육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대학 입시에만 매달려 있다. 가르치는 선생 자신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명문대학에 집어넣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고 있다.

심지어 교사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학부모에게 돈을 뜯어내는 데 혈안이 된 선생이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사회환경이 이러니 질서 교육, 도덕 교육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내가 보기에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 곳은 종교밖에 없다. 다행히 한국에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밤에 좀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집 건너 하나씩 빨갛게 불을 밝힌 교회의 십자가가 보인다. 

 

성남시로 들어가다 보면 집 없는 빈민이 모여 사는 비닐 하우스 촌이 있는데, 거기에도 어김없이 교회가 있다. 미리 밝혀 두지만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무릇 종교라면 세파에 지친 힘없는 인간들을 따뜻이 위로해 주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면, 한국 사람들이 무엇엔가 의지하고 싶은 갈망이 그만큼 크다는 쪽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일본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300년이 넘었지만 교인은 겨우 300만 명이 될까말 까다.
다른 종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국민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본 사람들이 종교에서 도피처를 찾아야 할만큼 삶이 어렵고 힘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므로 어디엔가 심신을 기댈 언덕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불행하게도 나라는 기댈 언덕이 되어 주지 못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자기 먼저 도망갈 궁리부터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지연이다, 학연이다 혈연이다. 따질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따져서 상대방하고 연결되는 공통점을 발견해야 한다. 거기에라도 의지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한국 사람들에게 지금은 힘들고 괴롭지만 천국에 가면 편안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은 말 그대로 '복음'이 아닐 수 없다.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한국이 이토록 교회가 많은 이유를 그렇게 풀이하고 있다.

한데 그토록 기독교 신자가 많은 나라가 왜 나 같은 외국인한테서 '무법 천지'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진실로 납득할 수 없다.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목사들이 신자들에게 어떻게 설교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많은 교회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내밀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파하고 있다면 한국사회가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다." - 이하 생략 - 1998년 12월 이케하라 마모루


한국교회를 향해 던진 그의 충고에서 받은 역설적인 생각은 이렇다.

- 기도하기 전에, 설교 준비하기 전에 먼저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 그리고 '할렐루야 아멘! 아멘!'하기 전에
새벽기도회에 나가기 전에 이 글을 먼저 읽으라고. 비록 이 글을 읽으면서 '망발(nonsense)한다'고 비난을 해도 그의 충고는 '한국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심지어 '일본 과거사(日本 過去史) 청산위원회'에서 나를 '매국노 명단에 올리겠다'고 협박을 해도 일본인의 충고는 옳기 때문에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국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로 소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자존심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은 자기 발전에 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 사람들이 1백 달러 시절의 사고 방식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우리의 교회생활 수준 역시도 "백 달라 이하"(以下)는 아닌지 모른다. 그는 또한 한국 어린이들을 보고 '온상 속에서만 자라는 '떡잎'으로 비유했다. 즉, 한국 어머니들의 자녀 애정은 확실히 남다르고 그것은 '애정'이라기보다 '집착'이라는 표현했다.

글쎄 '미국 명문대에 입학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한다’는 학부모의 비뚤어진 이기심은 'SAT 문제'를 빼돌린 비리 강사까지 쟁탈하는 부모들인 것을 보면, 그런 부모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질서의식'을 가질 순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충고에서 한국 교회의 생리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솔직히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들은 하지만 사실 '하나님의 교회'인가 아니면 '십자가의 예수'를 싹 빼버린 "내 교회"들이니까(?)

즉, 그는 한국을 가르쳐 '총체적 무질서의 나라'라고 했고 교통사고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라고 했다.
이 글 제목 "교통 법규부터 지키시오! 아멘!"은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을 간추리고, 맞장구 친 것이다. 때문에 간혹 독자들 중에는 "인용할 나라가 없어서 하필이면 일본이냐고 나무랄지도 모른다. 맞다. 정말 맞다. 일본에 대한 우리들의 정서로는 개똥까지도 주기 싫은 관계이니까. 그리고 일본을 선교하는 한국교회의 자부심에서도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일본인의 비판 앞에서도 우리는 오기를 부릴 수가 없다. 그리고 그가 "맞아 죽을 각오로 한국'을 비판했는데도 그가 맞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은 한국인들의 생활패턴이 그 일본인에게 돌을 던질 자신이 없다는 것 아닐까. 심지어 그의 글이 아직도 한국에서 폐기 처분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러면 우리는 어째서 '질서 없는 나라'가 되어 이런 부끄럼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또 이런 신문기사는 어떤가. '운전 문화는 사회의 얼굴. 난폭·무질서 운전, 책임·배려·준법 의식은 품격운전의 지름길'이고 특히 교통문화는 사회의 다른 예절보다 더 중요하다. 인명 피해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는 대부분 안전 규정이나 질서를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인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은 아직 선진국 대열에 낄 수가 없다.

바로 이것은 '이웃을 배려하지 못하는 곧 자신만 생각하는 우리네 정서'가 아닌가. 물론 우리네들처럼 인정(人情) 많은 나라가 어디에도 또 있겠는가. '나라 살림'이 어려울 때는 우리는 장롱에 숨겨 두었던 자식들의 돌 반지 팔아서 나라를 건졌고, 또 늦은 밤에도 시루떡 접시 돌리는 민족 아닌가. 때문에 우리가 '질서 없는 나라'가 된 것은 우리의 정서가 각박해서가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욕심이 지나쳐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즉, '남 잘되는 꼴'못 보고, 나보다 앞서 가는 꼴을 못 보는 그 잘난 특성들 때문에 속없이 떵떵거리기 좋아하고, 남을 의식하며 사는 습성.

그뿐인가. 얼어 죽어도 체념 때문에 곁불에 몸 녹이지 않는다는 우리들의 잘난체하는 우리들에게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싹틀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한국 교회가 '교통질서가 없다'는 비평을 듣는 것은 바로 복음에 성실하지 못하고 교회생활을 열심 하면서도 모두가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인들의 질서 의식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때문에 열심히 믿는다는 것이 다는 아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질서가 올바로 세워질 때, 사회의 질서는 물론 도덕치(置)(value)도 높아지는 것이다. 특히 기복신앙으로 교회부흥의 수단으로 삼는 한국 교회의 정체성까지도 "교통 법규부터 지키시오! 아멘! "이라고 충고는 한국교회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질서 없는 한국사회에 대한 책임을 한국교회는 통감해야 한다. 복음이란 바로 '이웃 배려' 아닌가! 그러니까 우리들의 신앙심도 질서 없는 이기심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즉 '행동하는 양심이 아니라 '내 축복만을 달라'고 조르는 탐욕적인 믿음이란 말이다. 자, 한번 더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우리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이방(異邦)이고 우리가 선교하는 일본인을 통해서 이런 부끄러운 '충고'를 듣게 하는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이다.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눅 19:40)
 

- 조선과 동아 일보 사설

1. '거짓말 天國'에서 벗어나려면 사법방해죄 도입해야 -- 조선일보 사설/2010/1/2/

법무부와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이 거짓 진술을 하면 처벌할 수 있게 하는 사법방해(司法妨害)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참고인이란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할 때 제3자의 입장에서 범죄 피의자의 혐의 유무(有無)를 증언해 주는 사람 을 말한다. 재판 과정에서 법정에 나온 증인과 비슷하다.  국회는 2월 임시국회에서 사법방해죄 도입을 비롯한 사법 개혁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는 위증이나, 남을 거짓으로 고소·고발하는 무고 사건 숫자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7년 일본은 위증죄로 138명이 입건돼 9명이 기소됐으나 우리는 3533명이 입건돼 1544명이 기소됐다. 무고죄도 일본은 133명이 입건돼 10명이 기소된 데 비해 우리는 입건이 4580명에 기소가 2171명이나 된다.

기소된 숫자를 기준으로 위증죄는 일본의 171배, 무고죄는 217배다. 일본 인구가 우리나라의 대략 2.5배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위증죄는 857배, 무고죄는 1085배인 셈이다. 우리 나라에서 위증 관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도 2006년 1066명, 2007년 1451명, 2008년 1792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증인이 법정에서 위증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그런데도 이렇게 법정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이 많으니, 어떤 거짓말을 해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수사 단계의 참고인 중에 거짓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대구지검이 2006년 적발한 위증 사범(事犯)을 대상으로 그 동기를 분석한 결과 '친분관계 때문'이 52.9%로 가장 많았고, '금전적 대가(代價)를 약속해서'가 26.5%로 두 번째였다.

혈연·지연·학연으로 엮인 연고주의·온정주의와 돈만 받으면 뭐든 다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회 풍토를 만드는 것이다. 법정에서든 수사 단계에서든 위증이나 무고는 범죄의 진실 규명을 방해해 반드시 처벌돼야 할 범죄자가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고 엉뚱한 사람이 억울하게 처벌을 받는 일이 생기게 한다. 미국에서 클린턴과 닉슨이란 현직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까지 몰렸던 것도 위증과 사법방해죄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거짓말을 잘한다는 더러운 이름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사법방해죄 도입이 필요하다. 

2. 선진화 깃발 아래서 벌어지는 ‘전방위 부패’ - -동아일보 사설 -2010/2/2 -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성매매업소 및 도박장과 경찰관의 유착비리를 끊기 위해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은행계좌 명세를 영장 없이 볼 수 있게 사전 동의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사생활의 과도한 침해” 라는 반발이 나오는 모양이다. 김준규 검찰총장도 “숨은 비리인 교육비리 척결에 전념하라” 고 지시하고 인사 청탁, 공사비와 교비(校費) 횡령 근절을 위한 수사에 나섰다. 잇단 교육계 뇌물 사건으로 망신살이 뻗친 서울시교육청은 비리 고발자에게 최고 1억 원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작년 말 공무원의 16%가 지난 5년 동안 예산 7억 원을 빼돌린 충남 홍성군 비리가 드러난 뒤 이명박 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과 결탁한 토착비리 척결을 지시했다. 산업화 민주화의 과제를 달성하고 선진화를 향해 달려가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후진국형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국격(國格)을 훼손하는 일이다. 

과거 박봉에 시달리던 시대와 달리 요즘 공무원들은 실직 걱정도 없고, 대우는 국민이 부러워할 정도다. 그럼에도 시민과 일상적으로 접하는 일부 공무원들이 민원인을 ‘봐주고 챙기는’ 행태는 여전하다.  교육계에도 경제수준이 높은 지역의 교장직이나 승진의 지름길인 교육청 장학사 자리를 놓고 상납이 끊이지 않는다. 돈을 주고 승진한 사람들은 '투자 원금’을 건지려고 다시 뇌물을 받는 악순환 구조다. 이런 교육비리가 강성 전교조에 투쟁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경찰청에서 경찰관의 개인 휴대전화 기록을 조사하겠다는 다소 극단적인 조치가 나온 것도 경찰관과 유해업소의 유착이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통화나 계좌 명세에 대한 영장 없는 조사는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지나친 수단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공직자 임명 때도 계좌추적 동의서를 받아 검증을 한다. 대민(對民) 현장의 경찰과 세무, 교육 공무원들이 받는 유착과 부패의 유혹은 고위 공직자 못지않다.

국민과 사정기관이 주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경각심을 일깨우는 효과는 있겠지만 실효성은 의심스럽다. 휴대전화가 아니더라도 업주와 접촉할 방법은 많다. 감사관실에서 들여다보는 줄 알면서 예금계좌로 뇌물을 받는 경찰관도 없을 것이다. 국민의 질타를 모면하기 위해 충격요법을 내놓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조치가 아니길 바란다.

무엇보다 일선 경찰과 교사, 공무원들의 투철한 공복(公僕)의식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 아빠는 경찰이다” , “우리 엄마는 교사다” 라고 자녀들이 자랑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치열한 자정(自淨)이 요구된다. 경찰관이 아침에 떳떳하게 정복을 입고 출근하는 운동도 필요하다. 공무원에게 돈을 주고 일을 해결하려는 민원인과 학부모도 사라져야 한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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