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데 큰일이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데 큰일이다.
로마서 4:1-25절
글/扈一麥
얼마전 우리 카페에 심각한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내용인즉 한국교회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데 큰일이다.라는 내용과 주일 성수하지않고 주일날 차타고 다니고, 예배하고 출근하고, 애인 만나러 가고, 돈쓰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전쟁에 몰아넣거나 망하게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한국교회가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받았다는 사단의 속임수에 미혹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성도들은 자신들이 천국백성인줄 알고 있지만 실상은 거의 대부분이 음부로 향하고 있다는 것과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데 큰일이다.라는 것을 경고하라고 해서 글을 만들어 이곳 저곳에 올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분의 소속교단은 순복음교회였습니다. 여러분도 이런류의 글을 보았으리라 생각하면서 믿음기만 하면 구원받지 못하면 구원이 무엇으로 받는지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로마서 4장을 보면서 그 해답을 찿아보고자 합니다.
로마서 4장 1절-8절 말씀을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1 그러면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육신에 관하여 무엇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게 되었다면 그에게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4 이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 보수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빚으로 여기지만 5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6 행함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는 사람의 복에 관하여 다윗도 말하였으니 7 말하기를 "죄악들이 용서받고 죄들이 가리워진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느니라. |
1절을 보시면.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이 가장 자랑하고 존경하는 조상입니다. 그런데 이 아브라함도 인간의 조건이나 노력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사람들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습니다. 행위는 인간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 義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은 자기 義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조상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된 아브라함 하나님께서 인정한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았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아브라함이 어떻게 인정을 받았습니까? 여기에는 인간의 교만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는 부패하여서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은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와 같아서 선한 행위로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아브라함도 역시 행위를 따라서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다 율법을 잘 지켰다면 아브라함도 자랑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는 없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율법을 잘 지켜서 자랑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랑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강력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아브라함 하면 순종부터 생각 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 갈데아우르를 떠나라고 하니까 떠나고 아들을 받치라고 하니까 주저함이 없이 받치고 하나님이 말씀만 하면 무엇이든지 척척 다 하는 아브라함을 생각합니다. 아브라함하면 순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 아브라함을 사람들이 볼 때는 하나님 앞에 순종을 참 잘한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잘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어떤 문제든지 옳다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사람이라면 자랑 할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구원 받은 사람으로서 자기가 자랑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순종이라는 단어를 믿음이라고 바꾸어 보면 말이 달라집니다.
3절을 보시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나요? 이 말씀은 창세기 15장 6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약속을 믿고 신앙 생활을 했으나 10년이 넘도록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장 5절)
이 말씀은 약속의 말씀이지만 현재 자식 하나 없는 아브라함이 믿기에는 너무 황당무계(荒唐無稽)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능히 하늘의 뭇별 같은 수많은 자손들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크게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기초로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을때 하나님께서도 그를 의로운 자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나라를 세우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양도 많이 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이 어떤 가정입니까? 원만한 가정이 아닙니다. 어쩌면 참 불행한 가정입니다. 자기가 바라던 처음 난 아들을 장자를 내 쫓아 버렸습니다. 어떤 여자에게서 낳았던 그것은 둘째 문제입니다. 오히려 허물과 실수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만을 보시고 그의 모든 허물과 실수를 다 덮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사라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다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사라도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말씀 합니다. 사실 인간적인 면으로 볼 때 사라는 악처입니다. 그런 악처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것이 행위에 포함된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용납 하지도 못하는 이 여자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행위로서는 아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의 법으로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믿음으로 받았기 때문에 오늘 우리도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시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을 기록한 후에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삯을 받는 일을 한다고 하는 말은 주인집에 법을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회사의 법을 지키면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회사에서 시키면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회사에 출근해서 서류를 보고 무엇을 만들고 하는 것은 그 회사의 법입니다.
그 회사의 법을 지키면 삯을 받습니다. 법을 지켜서 삯을 받는 것을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법 지켜서 삯 받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을 지켜서 삯을 받는 것은 이것은 은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일해서 돈 받는데 그것이 무슨 은혜입니까? 내가 회사에 출근해서 법을 지켜서 돈을 받아 오는데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당연히 받을 것을 받아 오는 것입니다. 법을 잘 지켜서 받아오는 것은 당연히 받아올 삯이고, 법을 안 지켰는데 예를 들어서 이 회사에서 일년 365일 일을 해야 하는데. 한달만 일했는데 한달의 삯을 주어야 합니다.그런데 한달도 일안해도 삯을 주는 것은 은혜입니다. 일을 안 하고 놀았는데도 삯을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법을 잘 지켜서 천국에 가면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법을 잘 지켜서 천국에 가면 삯으로 가는 사람이냐? 그렇지 않으면 은혜로 가는 사람이냐는 말씀입니다. 한국교회가 천국가는 문제와 세상사는 문제를 구분 못하여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구약에는 지키면 내 백성이 되고 복을 주겠다고 하셨고,신약에는 믿음으로 구원해 주신다고 하시면서 믿는자는 죽음을 보지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법을 잘 지켜서 가는 사람은 삯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법을 못 지켰는데도 가면 은혜로 가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이 무엇을 설명하려고 하느냐면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이 삯으로 가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은혜로 가는 것이냐 이 둘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삯으로 가려면 율법을 잘 지켜야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로 가는 것이라면 법을 못 지켜도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삯으로 가겠습니까? 은혜로 가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자기 노력으로 선하고 착하게 살아서 가려고 하면 못가는 것입니다. 613가지 율법을 다 지켜야 합니다. 그것을 다 지키다가 하나라도 범하면 다 범한 것입니다. 마음이 착해도 못 갑니다. 마음 착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당당하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켜서 은혜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 일을 해서 못 가느냐면 일을 해서 못가는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거기 가서 살 만큼 일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 보세요 하늘나라 가면 금 면류관을 받고 열두 보석 집에 살고 그런데 그 열두 보석 집을 우리가 오십년 동안 벌어서 그것을 다 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부자가 그것을 살 수있나요?
여러분이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만 믿고 천국에 가면 모든 것을 그냥 준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을 어떻게 벌어서 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백년을 아니 그 이상을 번다고 해도 천국을 살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천국은 일해서 갈 생각도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믿기만 하면 구원받느냐? 정신없는 소리입니다. 일해서 천국을 얻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도둑들입니다. 일해서 한다면 정당하게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인데 일하겠다는 것은 도둑질이나 해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일해서 벌겠다고 하는 것은 도독질이나 하지 않고는 채울 수가 없습니다. 사실 도둑질을 해도 천국은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잘 지켜서 천국을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도둑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거절하는 자는 심판을 이미 받은 자입니다.
5절을 보시면.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바울은 노동자들의 일상 생활을 예로 들어 믿음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일을 하고 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일을 했는데도 삯을 주지 않으면 빚이 됩니다. 이와 같이 만일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면 그것은 행위의 대가로 주어지는 보수이지 은혜는 아닙니다. 그러면 은혜의 개념은 말살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은 자에게 품삯을 준다면 이는 순전히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경건치 아니한 자, 곧 죄만 짓고 허랑 방탕한 탕자와 같은 자도 믿음으로 나아 오기만 하면 기쁨으로 영접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겨 주십니다. 하나님은 실로 은혜가 풍성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율법을 못 지켰습니다. 일을 안 했으니까 경건치 못한 자입니다. 법을 못 지켰으니까 경건치 못한 자입니다. 그런데 의롭다 하신 자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법을 못 지켜서 경건치 못한 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내가 의롭다 여김을 얻는 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의인으로 보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정말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믿음을 의를 보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죄를 다 용서 하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는 말씀 그대로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용서 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일입니다. 세상에서 지키면 복을 주시지만 일(율법)을 하는 자는 삯을 주십니다. 많이 지키면 많이 주시고 일을 안하면 구원은 받지만 세상에서 살때에 쓸 물질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아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아버지의 법을 지키면 용돈도 주십니다.
6절-8절을 보시면.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6절-8절은 다윗을 예로 들어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죄의 은혜를 덧입은 구약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것은 그의 훌륭한 인간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를 기초로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람의 참된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요, 장군이요, 시인이요,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문무 예술에 뛰어난 전인 적인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아무 죄없이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도 시를 읊고 비파를 뜯었습니다. 그가 비파를 뜯으며 노래를 부를 때는 악령에 시달리는 자도 상쾌함을 얻었습니다. 그는 또한 여인들로부터도 크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거대한 골리앗을 무찌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은 창화하며 그를 영접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절)
뿐만 아니라, 그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대권을 한 손에 쥔 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에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의 인간 조건을 살펴 볼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인생의 참 행복이 있다고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도 사죄의 은혜를 받은 자가 가장 행복하다”고 노래했습니다. '불법'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요, '죄'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치워 버린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이면 냄새가 나고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끗이 치워 버리면 아주 상쾌합니다. 이와 같이 불법을 사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범한 죄가 산더미처럼 많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죄를 가리운다는 것은 죄가 눈에 뜨이지 않게 가리운다는 뜻입니다. 죄를 인정치 아니한다는 것은 죄를 죄로 간주치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지은 죄가 많지만 주께서 그 죄를 깨끗이 치워 주시고 죄를 가리워 주시고 또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가장 복된 것입니다. 세상에 축복이 많이 있지만 이처럼 큰복은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을 보시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사람이 몸이 아프거나 실패했을 때 고통스럽습니다. 또 사람들로부터 무시 받거나 실연을 당했을 때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죄를 범했을 때입니다. 죄의식이 주는 고통은 뼈를 쇠하게 하고 그 영혼을 눌러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보배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 죄의 사슬은 끊기고 자유자가 됩니다. 그때의 기쁨과 자유는 체험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를 체험했습니다. 그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해 충신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무고히 피흘려 죽게 했습니다. 그는 이 죄 때문에 악몽을 꾸고 심한 괴로움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왕좌에 앉아 있어도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참된 행복이 없음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나단 선지의 책망을 받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사죄의 은혜를 덧입었습니다.
다윗은 이 사죄의 은혜를 덧입은 자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돈이 없거나 인간 조건이나 환경 조건이 나빠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죄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죄가 인격을 파괴시키고 인간 관계를 파괴시키고 가정을 파괴시키고 사회를 파괴시킵니다. 이 죄는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심으로 이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는 자가 가장 행복한 자'입니다. 믿음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루는 것은 영적인 일입니다. 세상에서 자범죄를 짓지않는 것은 육신 적인 일(율법)입니다. 제발 영적인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문제를 율법의 행함과 육신적인 일과 혼동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