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간 잠자리에 들면서도, 깨어나서도, 배를 채우기 위해 숟가락을 들 때도, 일을 할때도
40대 중반을 넘어선 나라는 존재가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세상을 향해 찬란한 꽃을 피우기도 전에 수많은 학생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됨을 보았고,
특종, 속보로만 자신의 과업을 성취해보려는 호들갑의 언론들을 보았으며,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수많은 어른들이 또 저 한편에 있었다.
정부는 지금까지 뭐했냐? 왜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나? 모두들 책임지고 옷 벋게 하겠다.
이제와서 이런 말과 호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말라는 끊임없는 희망고문도
지금의 행태로는 개개인이 품었던 희망의 불씨마저도 꺼트릴 지경이다.
우울하고, 슬프다.
고작 어른이랍시고 돈 벌고, 맛있는 것 사주고, 예쁜 옷 입히고, 좋은 대학 보내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어른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인가?
이 시대의 교육이 잘못되었다며 학원에 과외에 학습지에 아이들을 지치게 만드는 그런 교육들이
다음 세대의 어른이 될 그들에게 무엇을 안겨줄 수 있을까?
그 동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배우기 보다는 목표를 향해 투쟁하듯 살아가는 방식만을 배우고
그 과정에 대해서는 간혹 부정과 눈가림과 타인의 행복을 방해, 위협하더라도
나의 영달만을 위해 살아가지는 않았나 기억하며,
또 우리들의 미래에게 그 방식만을 쉽게 이해가 쉽도록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우리들은 이번 일로 헌법에서는 그 유죄를 묻지 않는 큰 과오를 저질렀으며
이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열어줄 수 있는 우리들의 숙제로
그 과오를 답습하지 않도록 행동할 때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노력하고 반성하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의 한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