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기독교의 인간론은 어떻게 다른가? (3)
3.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구성요소(構成要素)
불교(佛敎)는 인간의 구성요소를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으로 보는 이원론을 주장합니다. 육체의 물질적인 것을 구성하는 기본 원소를 사대(四大)라고 하는데, 여기서 사대(四大)란 흔히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인간을 구성하는 것은 물질적 형체로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교가 창시 될 때 당시 인도의 유물론자들은 인간을 오로지 사대(四大)의 화합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창시자는 인간이 외형상 물질적 존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을 구성하는 또 다른 근간적 부분으로서 정신적(精神的)인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정신적인 부분에도 역시 네 가지가 있다고 하였으며, 물질적인 부분을 색(色)이라 칭했던 것처럼, 정신적(精神的)인 부분을 명(名)이라 칭했습니다. 결국 고타마 싯달타는 인간이란 정신(精神)과 물질(物質)의 결합체라고 파악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오온(五蘊)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인간이란 물질적인 색온(色蘊)과 정신적인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薀)인 오온(五蘊)으로 인간이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1) 오온(五蘊)
오온(蘊)이란 “다섯 가지가 쌓임, 모임, 집합”을 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특히 인간(人間)존재를 해석하기 위해, 인간의 구성요소를 다섯 가지의 집합(集合)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앞에서 말한 대로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형체인 색(色)이라는 집합과 정신(精神)을 구성하는 네 가지의 집합을 일러 오온(五蘊)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불교의 인간론(人間論)이라고 할 수 있는 오온설이 성립되었습니다.
오온이란 인간은 물질적인 요소인 색온(色蘊)<지(地)수(水)화(火)풍(風)>과 정신적인 요소를 심리작용의 진행과정에 붙인 이름으로서 수(受)는 수동적인 감각작용이며, 상(想)은 주어진 감각에 의하여 표상을 구성하는 과정을 말하며, 행(行)은 인간의 정신작용이 대상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의지를 말하고, 식(識)은 대상을 신식한 후 그것을 기초로 판단을 내리는 주관을 의미하는 데, 이러한 네 가지 요소가 더하여져서 인간 존재를 구성한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인간론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관찰법입니다.
불교(佛敎)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 오온(五蘊)사상을 입으로 불러 봤을 것입니다. 기독교(基督敎)의 모든 예배시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듯, 불교인들도 공식적인 의례가 있을 때마다 독송하고 있는 ”반야심경“ 앞부분에서 이 오온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은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별개의 것인 양 집착하지 말기를 촉구하며 그 구체적 내용인 오온(五蘊)도 마찬가지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색온(色蘊)
색온(色蘊)은 인간의 육체를 말하는 것인데, 사람의 몸을 세분하면 사대(四大), 즉 흙(地) 물(水) 불(火) 바람(風)의 네 가지 요소가 화합하여 물질을 이룬 것이 모든 생명체의 육체란 것입니다. 색온의 네가지 요소는 실제에 있어서 각각 다음과 같은 성질을 의미합니다. 고체성(地)은 굳고 단단한 성질을 지닌 것으로 만물을 실을 수 있는 흙(地)을 의미합니다. 액체성(水)은 습한 성질의 물질로 만물을 포용하는 물(水)을 의미합니다. 열(火)은 따뜻한 성질로 물질을 성숙시키는 힘을 의미합니다. 운동(風)은 움직이는 성질로 물질을 성장케 하는 바람을 뜻합니다. 이 네 가지 요소들이 적절히 화합하여 물질적인 형체를 이루는데, 이런 물질적 형체를 색온(色)이라고 부릅니다.
(2) 수온(受蘊)
수온(受蘊)이란 오온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느끼는 감각기관(感覺器官)을 말하는데, 사람의 실체라 할 수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곧 생명의 실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생명을 담고 있는 그릇에 불과하며, 생명의 활동을 느끼며 감지하는 기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희로애락은 바로 마음의 감정에 의해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육체 속에 정신이 있으며, 육체 속에 있는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외부 통로가 여섯 군데 있는데 이것을 육근(六根)이라고 합니다. 수온(受蘊)은 육근을 통해서 마음속으로 들어온 것이 즐거움이나 괴로움, 고통 등의 감정을 느끼는 감수 작용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외부로부터 보고, 듣고, 만져보고, 그 자극에 대한 어떤 감각이나 지각이나, 인상 등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감수 작용을 의미합니다.
(3) 상온(想蘊)
상온(想蘊)이란 생각하는 기관, 즉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생각을 관념이라고 하는데 관념이 쌓이고 쌓여서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낳아 이 생각들이 눈덩이 불어나듯 부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들의 고뇌라고 하는 번뇌(煩惱)망상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의 마음은 입력되지 않은 컴퓨터의 디스크와 같이 맑고 깨끗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깨끗한 마음에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이 하나하나 쌓여 진다는 것입니다. 상온(想蘊)이란 수온(受蘊)에 의한 감수 작용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표상(表象)작용을 의미합니다. 수온(受蘊)이 감정을 느끼는 감수 작용이라면, 상온(想蘊)은 그 대상을 인식하고 마음속에 이미지를 갖는 것, 상상 또는 관념 그리고 표상(表象)하여 개념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4) 행온(行蘊)
행온(行蘊)이란 상온(想蘊)을 거친 대상에 대하여 스스로 의지하고, 또는 충동적 욕구로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마음을 구성하는 작용을 의미합니다. 행온(行蘊)은 외부로부터 보고, 듣고, 만져본 것들이 마음속에서 감수작용, 표상작용에 의해 생긴 대상들을 의지하고 행동(行動)으로 작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5) 식온(識薀)
식온(識薀)이란 감수작용, 표상작용, 행동작용에 대하여 판단이나 추리에 의해 식별(識別)하는 작용을 의미합니다. 식온(識薀)은 대상을 구별하여 인식하는 것이며, 또한 어떠한 인식에 대해 판단하는 의식(意識)작용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마음의 작용 전체를 통괄하는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온(五蘊)에 의한 마음의 인식(認識)작용을 다시 설명하면, 인간이 한 꽃밭을 지나가다 눈길을 끄는 꽃을 보고서 기쁨을 느꼈다면 이는 감수 작용인 <수온(受蘊)>때문이고, 그 마음에 드는 꽃을 꺾어서 자신의 집 응접실에 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면 표상작용인 <상온(想蘊)>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꽃을 꺾어서 집으로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하여 행동작용을 취하려 했다면 이는 <행온(行蘊)>이고 그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별하여 그래도 될지 안될지 등의 판단을 내렸다면 이는 식별작용인 <식온(識薀)>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내면에 있는 몇 단계의 정신이 유기적이면서 거의 동시적으로 활동함으로서 육체를 통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고 합니다. 오온(五蘊)은 인간구조를 설명하는 것으로, 인간이 왜 고통의 존재(存在)인가를 설명하는 것이며, 인간은 물질과 정신의 두 힘이 복잡하게 얽혔기 때문에 고통(苦痛)의 존재(存在)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고통의 존재는 자업자득(自業自得)에 의하여 윤회(輪廻)전생이 있기 때문이라고 불교는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인간(人間)이란 오온(五蘊)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사람들이 그 몸을 불변하는 실체처럼 여기고, 그 욕구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견(身見)이라고 합니다. 신견이 기독교의 원죄와 같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신견이라면 극복할 수 없지만, 신견(身見)은 유연이므로 극복과 타파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몸은 오온(五蘊)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몸에 대한 집착이 제거될 때 진여(眞如:사울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를 보게 되는데, 그 진여를 제대로 본 근본적(根本的)인 주체가 바로 법(法:진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육체와 정신을 별립적(別立的)으로 보지 않습니다. 기독교와 같은 영혼의 영생 따위는 있을 수 없고, 이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은 창조주가 창조한 피조물이 아니라 그 물(物)질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물체간에서 상호작용하는 상의상자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논리입니다. 즉 만물이 생멸하는 것은 만물이 상호작용하는 것이고, 그 주체가 되는 힘은 업(業:행위) 번뇌라고 합니다. 업의 작용에 의하여 연기현상(생사존재)이 일어난다는 인간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속됩니다.)
서재생목사(서울대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