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바를 알지 못할 때의 확신
여호수아 23:1-16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2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
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4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7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8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9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12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13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14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
1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16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
많은 사람들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남긴 작별 인사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이가 든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부르심에 충성하라고 한 번 더 당부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저버렸기 때문에 그의 고별 설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우리는 본문을 이런 식으로 전달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해석은 주 하나님의 의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여호수아를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인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고별 설교 및 언약을 새롭게 하는 사건은 궁극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새언약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언약을 새롭게 하면서 오직 그 언약 안에 충성할 때에 약속의 땅을 차지할 것을 확증하였습니다. 이는 여호수아를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확증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주의 백성 사이에서 중보자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 안에 영원하고 참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이 말씀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계셔서 하나님과 주의 백성이 영원토록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보증하십니다. 이제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섰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존전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의 대표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물론 그들에게 말하면 모든 백성들에게 말하는 것이 됩니다. 여호수아가 제일 중요하게 말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가는 동안에 모든 족속들을 물리쳐 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어도 분명한 것은 아직 진멸되지 않은 가나안 족속들이 여전히 그 땅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마저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넘기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믿기만 한다면 그들은 두려움이 전혀 없을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가면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먼저 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알려 주었습니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그 약속을 받아야 했고 주께 매달여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할 수 있을 것이며 여호와를 저주하여왔던 가나안 족속들과 섞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당시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보다 문명이 많이 발전되어 있었고 농업에 익숙하여있었습니다. 광야에서만 살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그들과 섞이는 것이 여러 면에서 풍성하여질 수 있다는 유혹을 받기 쉬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가나안 족속을 바라보며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부러워한다면 가나안 족속을 물리치지 않고 혼합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가나안 족속을 물리쳐야 하는 사명을 지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었습니다. 이 사명을 놓치지 않을 때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킬 수 있고, 그러할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으로 가나안 족속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때 조건은 그들은 가나안 족속에게 유혹을 받아 그들과 섞여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하면 주 여호와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이 이룬 것과는 비교될 수 없는 거룩한 문화와 풍성한 삶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주의 언약에 충성하면 여호와께서 주의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한 사람이 천명의 가나안 사람을 도망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가나안 족속들과 섞여 버린다면,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을 다시 강하여지도록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그러면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에게 올무와 덫이 되면서 이스라엘보다 더 강하여져서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을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삶은 풍성한 삶이 아니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비참을 겪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땅을 역사 가운데 허락하신 내용입니다. 여호수아서는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말하면서 그 땅을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게 분배하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여호수아 11장 23을 보면,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 21:43-45은 땅이 분배된 사실을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얻었다고 하여 영원한 복락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땅과 함께 주어진 언약은 그 땅에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누리며 사는지에 따라 복락과 저주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22-24장은 어떻게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약속된 축복을 누리며 사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여호수아 21장은 요단강 동편에 살게될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이며, 23장은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을 향한 말씀이고, 24장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다시 재확인하고 새롭게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는 여호수아 23장은 땅을 다 정복하고 난 뒤에 그 땅에서 어떻게 약속된 복락을 누리는지를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여호수아는 나이 많아 하나님 앞에 가게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 많아 늙었도다”(수 23:1-2).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이 설교를 하는 때는 가나안을 정복한지 약 10년이 지난 때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고별 설교에서 먼저 하나님께서 그때까지 행한 구원의 역사를 회고합니다. 여호수아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보았거니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대할 때 먼저 과거를 회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과거를 회상합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어떻게 행하셨는지, 나의 가정과 사회와 나라에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미래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며 미래를 향하여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회상해 보아도 그림이 분명하게 그려집니다. 미국의 역사를 성경적으로 회상해 보아도 분명하여집니다. 우리 각 개인의 삶을 성경의 조명을 통해 회상한다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보입니다.
당시 가나안에 살던 부족들은 이스라엘보다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훨씬 앞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러한 가나안 부족들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행하심을 회고합니다. 예를 들어 여리고 성을 회상해 봅시다. 그 성은 강력한 성벽이었습니다. 그 어떤 공격도 다 막아낸 철옹성벽으로써 가나안 사람들이 자랑했던 곳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게 하고 마지막 칠일이 되는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게 하였습니다. 그 때에 성벽이 무너지자 이스라엘은 거저 그 성을 점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행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친히 그 성을 무너뜨려 정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승리는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이기는 것이 아니라고 회고합니다. 정녕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심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음을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역사를 회고하면서 미래도 똑같이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을 전망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수 23:5).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점령하여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는 여전히 남아서 대항하는 잔재들이 있었습니다. 작년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죽은 해입니다. 리비아는 유엔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카다피를 포함한 남은 세력들은 한동안 계속 저항하며 항전하였습니다. 결국 카다피가 사로 잡혀 죽게 되면서 카다피의 독재 세력은 완전하게 무너졌습니다. 여호수아는 공식적으로 가나안 땅의 주요 도시를 공격하여 무너뜨렸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가나안의 남은 세력들이 계속 저항하며 항전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승리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과 담판을 짓고 완전히 그의 허리를 끊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남은 잔재 세력들이 악날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적군의 잔재들과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무찌를 의지입니다. 그 의지만 있다면 완전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하였어도 잔재 세력과 싸울 의지가 없다면 원수의 허리가 비록 부러졌어도 그들은 얼마든지 우리에게 피해와 고통을 줄 수 있으며 또한 때가 되면 힘을 모아 우리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가 지금 그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수 23:1). 분명한 이스라엘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남은 잔재와 싸울 의지가 없을 때는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고 여호수아는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싸울 의지만 분명하다면 과거에 큰 능력으로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남아 있는 잔재를 멸하려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땅을 완전히 차지할 수 있을까요? 여호수아는 그것을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수 23:6-8).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과거를 회상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수 23:9). 그러면서 미래에 대해 보장합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수 23:10). 조건은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때 모세의 율법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되풀이 하여 그 조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있어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는 조건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수 23:11).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조심하는 것입니까? 12절과 13절이 대답합니다.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지금 여호수아는 모세의 언약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언약적 사랑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다른 민족들은 바알과 아스다롯 등, 악령들이 만들어낸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왕래한다는 것은 악령들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다른 더러운 악령들을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이해할 때 우리는 결혼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혼 언약이란 결혼한 대상 외에 다른 대상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언약을 통해 하나님과 결혼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특히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억지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충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에 언약대로 사랑하지 않고 다른 민족과 조약을 맺으면 다른 신과 언약을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주의하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주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와 구세주로 삼는 것이 우리의 미래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보증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문화와 뒤섞여 살면서 세상의 영을 사랑하고 우상으로 삼을 경우, 또는 쿤달리니 현상 및 임파테이션을 통해 악령을 받게 될 경우, 타종교와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합할 경우, 결코 주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세상과 함께 우리를 제 멋대로 굴레를 씌워 농락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상태를 예수님께서는 맛을 잃은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이러한 상태가 되면 어떻게 될지 여호수아가 선포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수 23:15-16).
우리는 주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적인 사랑의 관계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언약의 조건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것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결정나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권면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호수아가 언약을 새롭게 한 사건은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남은 자, 즉 신실한 신자들을 추리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을 새롭게 함으로 자기 백성만을 따로 추리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외모나 신분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에 속할지라도 참으로 언약 가운데 온 맘을 다해 하나님께 속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수아 앞에 섰던 자들 중에는 마음으로 그 언약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과 동참한 자들로 나뉘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에 동참한 남은 백성들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셔서 메시야를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진실한 자기 백성을 붙들어 남은 자가 되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중보로 하는 참 언약은 십자가를 통해 남은 자와 거짓된 자를 나눕니다. 같은 교회를 다녀도 십자가 안에 거하게 되는 자는 중보자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서 서게 되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들은 같은 교회 내에서도 참 언약을 거절합니다. 따라서 새언약의 선포와 함께 그리스도께 속한 자와 그렇지 않는 자가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은 남은 자에 대해 언급합니다. 남은 자들은 중보자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하게 되면서 반드시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종교적이며 열정적이더라도 중보자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의 언약인 십자가를 받지 않는 자들은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복음을 아는 입장에서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를 대할 때 오직 예수를 붙들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적으로 실패하고 성공하는 일에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공인지 실패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성공과 실패는 우리가 “오직 예수”를 붙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다가올 미래의 행복은 이 세상에서의 일들을 포함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영원한 새하늘과 새 땅의 행복을 말합니다. 죽음 후에 또는 예수님의 재림 후에 들어갈 영광과 축복의 나라를 말합니다. 누가 그곳에 들어갑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에 충성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 가운데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새언약으로 인하여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여호수아와 언약을 새롭게 하였던 이스라엘 민족은 그 이후 언약에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사사기 2: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삿 2:20-23).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의 잔재를 남겨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불순종할 때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찌르게 하기 위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 땅에서 우리가 겪는 많은 아픔과 패배마저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로운 미래를 앞두고 우리가 가장 많은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새언약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흥망은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우리의 흥망은 오직 언약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언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여호수아는 그리스도 편에 서서 남은 자의 대표로 말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5:15).
주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조심하여 주를 사랑하라.” 주께서는 주의 호의를 우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주를 위해 택하고 그분만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무한하게 우리에게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 복의 절정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우리의 신앙 생활의 끝을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8-22).
우리 주 여호와는 우리에게 전부가 되시던지 아니면 아무 것도 되지 않으십니다. 양다리를 걸친 신자는 결국 맛을 잃은 소금 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호수아 앞에서는 주를 섬기기를 원한다고 말하였지만 나중에 보면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돌아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온 맘으로 주께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얼마든지 여호수아 당시의 사람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할 경우 우리가 섬기는 그것들, 즉 우상들이 우리의 삶에 올무가 되어 아무런 삶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의 마음이 야고보 사도를 통해 선포되고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 4:4-5).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복음 안에서 거듭난 우리 각자에게 영적으로 적용한다면 우리에게 죄와 싸울 의지만 있다면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지금 우리에게 죄와 사단과 세상과 싸워 완전한 승리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려는 의지인 것입니다.
이 시간 여호수아 앞에서 마음을 모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늘 우리도 이 예배 시간을 통해 주 하나님께 우리의 삶과 마음을 전적으로 다 내어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미래는 우리가 얼마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이 날을 통해 더욱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고 붙드는 복된 역사가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