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4:10)
"모세의 죽을 때 나이 120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쇄하지 아니하였더라"(신34:7)
모세가 하나님깨서 보낸 천사와 대면하면서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모세가 입이 둔한자인가?
오늘 그시대의 자료를 보면서 알아 보도록 할 것이다.扈ⓗ
Moses 라는뜻은 설명으로는 "건져낸다"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아들"이라는 뜻일 것이다.모세(Moses)는 왕자라는 뜻 (애굽을 나온 것은 BC1290년 경). 모세는 레위 족속 아므람과 요베겟 사이에서 낳으며 미리암과 아론의 동생이다. 당시 애굽의 박해로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물에 띄웠는데 마침 애굽의 왕녀(하트셉슈트)가 발견하고 데려다가 양자를 삼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유모로 들어가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양육 받으며 애굽의 학술에 통달하였다(행 7:22). 모세라는 어원는 '아모스' '투트모스'등 처럼 '모스'라고 발음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로 발음하며 '모스'의 뜻도 이스라엘은 물에서 건진자 라고 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등극하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에 힘입어, 애굽의 정치체제를 봉건군주들을 중심으로 한 지방분권 체제에서, 국무총리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로 급히 전환시켜 놓았다(47:20-26). 요셉의 후광을 입어 그의 형제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살기 좋은 땅 고센과 라암세스를 중심으로 번창하였다(창47:6,11).
그러나 주전 1806년 요셉이 죽자, 지방의 봉건군주들은 기근으로 인하여 할 수 없이 빼앗기게 된 권리들을 되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중앙의 고위관리들은 요셉 이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갈등과 투쟁으로 애굽의 국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이 때를 틈타서 애굽을 장악한 셈족이 있었다. 그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내려와 팔레스틴을 거쳐, 애굽으로 쳐들어 왔다. 애굽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힉소스(Hyksos, `외국에서 온 통치자`란 뜻)라고 불렀다.
힉소스족은 모두 여섯 명의 왕들이 애굽을 약 150년(주전 1720~1570년) 동안 통치했다. 이 사실은 애굽의 역사를 가장 잘 전해주고 있는 주전 3세기경의 애굽 제사장 마네토(Manetho)의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전 3천년기로부터 기록되어 있는 애굽 왕(paraoh)들의 명단에 보면, 위의 기간에 해당되는 애굽 왕들의 이름이 없다. 주전 약 16세기 초엽, 드디어 힉소스족은 애굽인들의 강한 저항을 받고 쫓겨나게 된다.
Ⅱ'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1) 요셉의 총리대신과 애굽 왕조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때의 애굽 왕조에 대해서는 애굽의 12왕조 때였다는 학설과 힉소스 왕조 때라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이 두 가지 학설 중에서 요셉의 때와 좀더 유사한 왕조는 힉소스 왕조가 아닌 애굽의 12왕조 때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해 왔을 때 요셉이 그들에게 준수토록 한 관습이 힉소스의 셈족 관습이 아닌 애굽의 관습이었고(참조, 창 46:34), 요셉 역시 애굽의 관습을 따르고 있었으며(참조, 창 43:32), 당시에 애굽이 힉소스 왕조의 침입을 서서히 받고 있었으므로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였던 당시의 상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때는 힉소스 왕조가 아닌 애굽의 12왕조 기간으로 보아야 하며 출애굽의 연대를 1446년으로 볼 때 430년 전의 사건이라 가정한다면 요셉이 총리대신이 된 때의 애굽 왕은 '세소스트리스 2세' (Sesostris II, B.C. 1894-1878)까지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
출 1:8에 보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장한다. 이 왕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행했던 이스라엘의 탄압과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을 두려워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이 후에 애굽의 적들과 결탁하여 자신들을 칠 것으로 생각하여 이스라엘에게 핍박을 가하기 시작한 왕이었다(참조, 출 1:8-10). 그렇다면 그가 적으로 생각했던 애굽의 적은 누구였겠는가?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애굽에 침입하여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했던 힉소스족이었을 것이며 요셉을 알지 못했던 그 왕은 이스라엘 역시 힉소스족으로 동일하게 취급하여 박해를 가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미루어 생각할 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힉소스족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왕, 즉 힉소스족을 미워하여 그들을 물리치기에 최선을 다한 왕이라 생각할 수 있으며, 애굽의 역사상 이렇듯 힉소스족을 미워하고 그들을 미워한 왕은 18왕조의 창시자인 '아모스' (Amose, B.C. 1584-1560)였으므로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박해하였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아모스'였음이 분명하다.
3) 유아 살해를 명령한 애굽 왕
'아모스'의 히브리인 학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인은 계속해서 증가하였다. 그리하여 애굽의 또 다른 바로 왕은 이제 히브리인의 모든 남자아이를 죽이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였는데 그가 바로 애굽의 위대한 정복자 '투트모스 1세'(Thutmose I, B.C. 1539-1514)였다. 이러한 증거로는 출애굽의 연대를 들 수 있는데 출애굽의 연대를 B.C. 1446년으로 생각한다면 모세가 출생한 연대는 80년 전인 B.C. 1526년이었고 이러한 연대는 투트모스 1세의 통치 기간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4) 모세의 구출자 바로의 딸
이제 출애굽의 배경에 관한 애굽 역사의 마지막 사건으로서 모세를 구출한 바로의 딸에 대해 생각해 보자. 바로의 딸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학자가 '하트셉슈트'(Hatshepsut, B.C. 1504-1483) 공주로 일치하고 있다. 그녀는 '투트모스 I세'의 딸로서 아버지 '투트모스 1세'가 죽자 자신의 배다른 형제인 '투트모스 2세'(Thutmose II, B.C. 1514-1504)와 결혼하였고, 그가 원인 모를 죽음을 당하자 자기 딸을 '투트모스 2세'와 궁녀 사이에서 태어난 '투트모스 3세'(Thutmose III, B.C. 1504-1450)와 결혼시킴으로 그들 위에 올라 왕의 권한을 가지고 애굽을 통치했던 여자였다. 그리므로 그녀는 모든 히브리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 속에서도 모세를 주워 기를 수 있는 권력과 대담성을 지닌 유일한 여성이었다.
Ⅲ.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
12왕조 이후 아시아계의 이민족 힉소스(Hyksos)족이 침투함으로 이집트는 200년동안 쇠퇴기에 들어가게 되는데 테베의 왕자 카모스가 힉소스족에 반란을 일으킨 이후에 그의 동생 아흐모스가 힉소스족을 추방하고 제 18왕조의 첫번째 파라오가 됩니다(BC 1570-1546). 이리하여 신왕국 시대인(BC 1570-1069), 제 18, 19, 20왕조가 32 파라오에 의하여 통치되는데 이 신왕국의 수도가 룩소(Luxor 그리스이름 테베-Thebes)입니다.
앞에서 본 자료에 애굽 왕조와 성경적 사건들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출애굽의 연대는 B.C. 1446년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출애굽의 연대를 B.C. 1290년으로 생각할 때 모세를 구출한 바로의 딸과 모세가 미디안에서 광야 생활을 할 동안의 많은 사건들이 애굽의 역사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세의 구출 사건이 '하트셉슈트'(Hatshepsut, B.C. 1504-1483) 공주였다는 사건과 일치하며, 모세가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도피 생활을 할 정도로 40년 이상을 통치한 '람세스 2세'(Ramses II, B.C. 1290-1224) 이전의 유일한 왕인 '투트모스 3세'(Thutmose III, B.C. 1504-1450)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외에도 모세 탄생 시 이스라엘을 박해했던 애굽 왕과의 일치성이나 그 후의 열왕기 시대의 성경 연대 등 모든 역사적 사실들이 B.C. 1446년에 출애굽 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Ⅳ. 모세는 왜? 광야로 도망하여야 하였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거절하였을까?
모세는 애굽의 왕자이며 파라오가 되려는 순간에 와 있을 무렵이었고, 애굽의 왕에게서 난 형이(궁녀에게서 남 적통이아님) 통치하고 모세의 어머니인 '하트셉슈트'가 섭정하던 때이다. 이무렵 애굽에 왕들은 친족결혼을 했다. 항상 눈에 가시인 모세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안 파라오는 모세를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재판하여 죽이려 할때. 모세의 어머니는 잠시 피할 것을 요청하였고 모세는 광야로 도망하게된다. 왕자가 노예를 한명 죽였다고 죄를 삼은 것은 정적이었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때 상황은 그것이 죄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
그후에 모세는 광야에 있지만 공주인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고 있었고, 어느날 모세의 형인 파라오는 반란을 일으켜서 '하트셉슈트'공주와 그추종자를 멸절을 하게된다. 모세의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이다. 절망에 빠진 왕자 모세는 죽기를 원했고 왕자의 신분으로써 끝났음을 인정하고 목동의 딸과 결혼하게된다. 그 흔적은 성경에 기록이되어 있다. 80세 된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갈때 아이들이 어려서 걸을 수 없게되자 대신 아이들을 나귀에 태워서 모세가 끌고 갔다.참조-출4:20
시간이 흘러서 모세의 형인 파라오1세가 죽고 모세의 조카가 파라오 2세가 된다. 그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세의 나이 80세에 미디안 광야에서 그는 이제 죽기를 원했다. 하나님은 인간이 모든 것을 포기할때 역사하신다. 그 순간에 모세를 부르셨다. 나라의 종으로 부리는 이스라엘 족속들을 구원자로 지목된 모세는 순간 갈등하였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모세를 지도자로 받아드리지 않을 것은 뻔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자기들앞에 나타난 도망한 왕자를 지도자로 인정할까?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에 핑게를 대며 거절을 하게된다. 모세가 말을 못해서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했을까? 아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왕이되기 위한 수업을 받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두려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않으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기적과 이적을 보여주며 지도자가 되라고 촉구하시며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지도자인 모세의 육신의 형이 아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를 대면해 줄 민족의 지도자가 형제인 아론이라는 것에 힘을 얻게된다. 그때에 모세는 결심을 하게되고 아론을 만나러 가게된다. 아론을 만난 모세는 모든 것을 아론에게 전하고 지도자로 인정받게된다. 하나님은 모세를 태어날때 부터 사용하시기로 예정하셨다.
그런 모세를 향후 40년동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시고 지면의 어떤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한 자로 인을 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정확한 시간에 역사하시며 기적을 보이시고 이적을 보이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가? 주님은 일맥과 모든이들을 한사람 한사람 사용하시기 위해 모세와 같이 지금도 나를 부르신다. 그것에 응답할때 때론어려움이 있지만 하나님의 역사안에 내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