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원하는 삶의 표준 마 5:43-48 / 扈一麥
♠우리는 흔히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구원을 받았다" 하는 말은 그 깊이가 깊어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다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크게 세 가지 내용이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았다"하면 첫째로는 영생을 얻었다는 뜻이요, 둘째로는 성화된다는 뜻이요, 셋째로는 소명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영생과 성화와 소명이 세 가지가 다 포함되어서 나에게 주어졌을 때 우리는 "구원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생을 주신 것을 믿습니까? 믿으니까 오늘 예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이제부터 하나님처럼 거룩해지기 위해서라는 것을 믿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삶은 이제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해야 하는 소명을 가진 삶이라는 것도 믿습니까? 아멘. 여러분, 분명히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구원 받았다." 라고 말할 때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생각하지 이제부터 하나님처럼 거룩해져야 한다는 것은 깜빡 잊어버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소명자로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도 자주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지고 '성화된다.' '거룩해진다' 하는 것이 구원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해진다'는 말은 예수그리스도의 부름을 받고 영생을 선물로 받은 후 드디어 인격과 삶의 표준이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표준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표준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과 삶이 예수님처럼 되어야 하는 새로운 표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좀더 분명히 우리에게 구별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처럼 된다.', '예수님처럼 된다.'는 이 표준과 대비 되는 다른 표준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6,47절을 보십시오. "세리도 이와 같이 아니하느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세리의 표준과 이방인의 표준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새로운 표준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세리의 표준은 나를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자는 미워하는 것입니다. 조건적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표준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인사하면 나도 인사하고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인사하지 않으면 나도 인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조건적이고 나 중심적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옛 표준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 옛 표준을 다 폐기 처분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표준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살아야 된다는 표준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처럼 되어야 한다는 표준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 입니다. 새로운 표준이 주어지니까 당연히 옛 표준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서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의 표준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44절을 가지고 한번 봅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처럼 살려고 하면 원수라 할지라도 사랑해야 하고, 핍박하는 자라 할지라도 기도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표준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구원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영생주신 것 확신하시면 날마다 이 표준에 놓고 스스로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표준에 맞는 것인가 아니면 내 멋대로 생각한 것인가를 짚어보아야 합니다. 또 마음에 무슨 감정이 일어났습니까? 그러면 그 감정이 예수님처럼 느끼는 감정인가 아니면 내 악한 소욕에서 느끼는 감정인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할 때도 하나님의 표준에서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세리의 표준에서 말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날마다 모든 언행심사를 새로운 표준에다 비추며 살 때 거룩해 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지금 분노가 많이 쌓여 있지 않습니까? 몇 사람들이 나라를 망치고 경제를 망치는 것처럼 비추어지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분노하고 있지 않습니까? 너나 할 것 없이 '네 탓이다'하고 돌멩이를 들고 마음껏 던지고 싶은 원한이 마음속에 쌓여가지 않습니까? 아무리 기도하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삭아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 힘써 기도하면서 '나는 누구의 표준에 맞추어 살고 있는가?'를 날마다 물어야 합니다. 세리의 표준을 가지고 산다면 당장 분노를 터트리고 죽여라 살려라 할 수도 있겠고 내 감정을 맘대로 쏟아 버릴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아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표준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시고 행동하시고 말하실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새로운 표준을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성경찬송 가지고 다니는 것 말고 너와 내가 다른 게 뭐냐?"고 윽박지르며 들어올 때면 할 말도 없고 뭐라고 대답하지도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 구원받았다는 것은 천국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의 삶의 표준이 달라졌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말틴 니몰러 목사님은 히틀러가 한참 포악한 정치를 할 때 교회의 목사들 중에 제일 먼저 히틀러를 대항했던 매우 용감한 사람입니다. 그는 1937년에 히틀러를 대항한 죄로 다차우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해방이 될 때까지 거의 6,7년을 독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독방엔 조그마한 창문이 딱 하나 달려 있는데, 그나마도 마당에 있는 교수대를 향해 있었습니다. 바깥을 보려고 창문을 내다보면 사람 목을 달아매는 밧줄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교수대를 보든지 아니면 거기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볼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심리적으로 고문을 많은 고통을 겪었겠습니까?
♠그 교수대를 볼 때마다 니몰러 목사님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곤 했다고 합니다. '만일 저들이 나를 교수대에 매단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만일 저들이 나의 목에 밧줄을 걸고 내가 딛고 있던 의자를 차버린다면 나는 마지막 숨을 내 쉬면서 그들에게 뭐라고 말할까?' 사실 이것은 니몰러 목사님만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면 누구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어 보는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 역시 언제 그 교수대에 달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니몰러 목사님은 그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이렇게 대답하며 마음으로 죽음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살인자를 저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기도하시며 죽음을 맞이하시지 않으셨던가? 나도 예수님처럼 생각하자. 예수님처럼 느끼고 말하고 죽자.' 그러자 마음은 평안해졌고, 오히려 그 평안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자가 되었다고 그는 간증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어떠한 표준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표준을 가지고 사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오히려 특권으로 알고 기뻐해야 합니다. '야, 나 같은 것이 무엇인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고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되어야 한다는 굉장한 삶의 표준을 갖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멋진 사람이 되게 하셨는가?' 여러분, 이것을 특권으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럴 때 참 향기로움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시는 여러분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은혜가 있으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