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사려고 한 성령운동가들 박재권 / 캐나다 주재 기자“초대교회의 디아코니아, 즉 나눔과 구제는 성령충만한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따라서 성령운동하는 교회는 당연히 디아코니아의 사역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 말은 지난 6월 27일부터 4일간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2011 미래교회콘퍼런스’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장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 말이다. 기독언론에 따르면, 한국교회희망봉사단(한교봉) 교육사업단과 연세대 신과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500여 명의 한국교회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참석한 행사의 마지막 날 ‘성령과 디아코니아’에 대해 강연한 이 목사는 “사도행전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결과로 초대교회가 탄생했고, 디아코니아, 즉 돌보고 나누는 것의 실천이 초대교회의 지속적 부흥과 성장을 뒷받침해 온 원동력임을 잘 알려 주고 있다”면서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에는 디아코니아의 실천이 당연히 따르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경우 1984년부터 지금까지 27년 동안 4천3백여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고, 국제구호 NGO인 굿피플, 탈북민 정착을 돕는 엘림복지회, 사랑과행복나눔재단, 호스피스 봉사 등 디아코니아의 사역이 점점 확대돼 왔다고 한다.
이들은 사도 바울에게 계시되고(갈 1:11,12,16, 골 1:23,25) 그에게 맡겨진(딤전 1:11)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은 죄를 “회개하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그들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음으로써”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된 사람들이었다(행 2:38). 그날 침례를 받은 약 삼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와 교제, 빵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 데 전념했던 것이 바로 초대교회이다(42절).
그들은 재산을 공동으로 썼고(45절), 여전히 성전 경배를 실행했다(46절). 이것은 사도 바울이 가르친 신약교회의 전통이 아니다. 초대교회는 신약교회로서의 모습을 아직 갖추고 있지 않았고, 유대인의 경륜에서 교회의 경륜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시작점에 형성된 지역교회였다. 성경도 구약성경만 있었기에 결코 신약교회의 교리적 모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주님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엡 5:18)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충만의 직접적인 증거는 “성도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행 4:31)과, “진리로 인한 박해를 견디는 것”(행 7:55; 13:52)과, “죄를 강력하게 책망하는 것”(행 13:9-11)임을 성경을 통해서 보여 주신다. 이 세 가지를 실행하지도 않으면서 주님을 거부하는 세상을 돈으로 도와줬다고 그것을 성령충만의 증거라고 한다면 성경과 성령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전통은 그것을 “영적으로” 적용했을 때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지역교회의 모습을 이룰 수 있지만, 성경의 진리를 믿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디아코니아’만 운운하며 성령충만을 자랑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비성경적인 일이다.
그러나 성령운동이란 은사주의자 자신도 알아듣지 못하는 비성경적인 방언이나 주절거리면서 그것을 성령의 역사로 오인하여 벌이고 있는 비성경적인 운동이다. 은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방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만 해야한다. 그러므로 골방에서 혼자 하나님과 대화를 해야한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괴상한 소리를 왜, 어디에 써 먹겠다고 내는 것인가? 그런 소리를 지껄인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희가 미쳤다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고전 14:23)
사도들 시대의 방언은 각 지역의 『고유 언어로 말하는』(행 2:8) 외국어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주체 없이 흘러나오니까 자기가 구원받은 줄로 착각하고서 그것이 성령충만의 증거인 양 생각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성령충만의 증거는 뜻도 없는 소리를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갈 5:22,23)와 구령의 열매(행 1:8)로 드러난다.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한다거나 성령충만의 증거가 방언이라고 가르치는 어리석은 자들이 누군가를 돕고 봉사한다고 해서 그것이 성령충만의 증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식 이하의 발상이다. 진짜방언 하는 자들은 소리를 질러대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도 평생 모은 수억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성령과 무관한 죄인들임에도 세상에서 나눔과 구제에 앞장선다. 그렇다면 성령운동하는 자들의 나눔·구제와 세상 죄인들의 나눔·구제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둘 다 돈은 있어도 성령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분파를 만드는 자들이요, 관능적인 자들이며, 성령이 없는 자들이니라』(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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