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존중하고 역사로부터 배우는 민족은 강하다
이스라엘 민족은 강하다. 몇 차례 거듭된 중동전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케 했다. 사방이 아랍국가들에 포위된 상태에서 이스라엘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그 정신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스라엘 헤르헤르山에 있는 국군묘지 기념관에는 이런 말을 청동판에 새겨넣었다. "과거를 망각한다는 것은 또 다시 나라를 잃게 되는 것이요,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곧 구원의 비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에서는 “Remember the Pearl Habour!"라는 제목의 포스터를 전국에 붙였다. 일본에게 당한 진주만의 치욕적인 패배를 기억하자는 이 말은, 미국 국민을 한 덩어리로 뭉치게 하는 데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나찌독일에게 호되게 당한 프랑스 전몰자 추도관에는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잊을 수는 없다“는 말이 쓰여져 있다.
그들은 실패하고 짓밟혔던 치욕의 역사를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다. 결코 잊지 않는다. 되새김질 한다. 그 안에서 배운 교훈을 자신의 골수에 깊히 새겨 넣는다.
우리는 어떤가? 주변 사람들에게 “8월 29일이 무슨 날이죠?”라고 물어봐라. 그날이 한(韓)민족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국치일임을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좋은 역사는 잘 기억하고 기념식도 성대히 갖지만 패배의 역사, 치욕의 역사는 기억에서 떠올리는 게 싫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는 게 없다면 언젠가 그런 유형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8.15 광복절만큼이나 8.29 국치일은 꼭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5천년을 이어온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남에게 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것은 오로지 딱 한 번, 일제 36년간이다. 그 시발점이 된 날이 1910년 8월 29일(경술 국치일)이다.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총감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한일합방조약에 합의했고, 1주일 후인 29일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이를 선포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게 된 것이다.
한일합방조약의 제1조와 제2조를 살펴보자.
제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全部)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 완전히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한다.”
이 조항을 보면 정말 간교하고 무서운 놈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제1조와 제2조를 해석하면, 한국이 일본에게 “이 땅을 통째로 다 드릴 테니까 받아주시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애청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도 “영구히”....
힘이 약하면 이렇게 당하게 된다. 미치도록 억울하게 당한다. 내 재산을 다 넘겨주고 자식들까지 노예로 넘겨주면서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로부터 36년간 일제 압박에 시달렸던 슬프고 굴욕적인 역사는 누구가 아는 바다. 그 역사를 죽은 상태로 방치해 놓아서는 안 된다. 그 역사를 살아 숨쉬게 해서 훌륭한 ‘실패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치욕의 역사를 감추지 않고 가르치고 있다. 2천년 간 나라를 잃고 타지로 방황하던 시절의 이야기, 나찌 독일에 의한 유대인 말살의 이야기 등을 눈물 흘리면서 자녀들에게 들려준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강대한 역사를 이야기해 주는 한편으로, 8.29 경술 국치일의 굴욕적인 역사도 이야기해 줘야 한다. 힘이 약하면 주변의 하이에나들에게 어떻게 당하게 되는지를 느끼게 해줘야 한다.
자녀들이 성공의 역사와 실패의 역사를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섭취했을 때 그들은 균형잡힌 역사관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그런 역사관을 정신적 토양으로 삼을 때, 우리나라는 되풀이될 지도 모를 실패의 역사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세계 속에 우뚝선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억하자, 8.29 국치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