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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힘찬 발걸음 2011. 7. 26. 03:42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글/扈一麥

 

 마태복음7:21-23절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우리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고민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7장 본문 말씀을 전체는 은사주의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쪽집게 같이 찝어서 21절-23절만 인용하면서 떨고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은 거짓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좋은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사주의자들은 항상 좋은 열매만 강조합니다. 나무가 좋아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애써서 말하려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좋은 나무는 저절로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합니다.

 

 천국을 가는데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말씀이 복음적 해석이 되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천국에 들어가려면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십니다. 그 뜻을 완전히 행치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 갈수가 없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노력해서 천국에 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겠습니다.

 

 마가복음3:35절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모친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으러 왔을 때 둘러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의 형제가 되려면 하나님 뜻대로 해야 예수님과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3:17절을 보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있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4:13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은 성도가 거룩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6-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의 뜻은 성도들이 기뻐하면서 살기를 원하시고 늘 기도에 힘쓰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신명기26:16절을 보면

“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성경에는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뜻이 많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위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한 가지라도 이행하고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내 형제를 사랑했는가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알고 짓는 죄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누가복음12:47-48절을 보면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한 자는 많이 맞을 것이요 몰라서 행치 아니한 종도 맞을 것이라 말씀 하십니다. 우리는 주인의 뜻을 알면서도 행치 못하고 모르면서도 행치 못하고 있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알면서 못하는 것이 더 많이 있습니다 .다 알지요 우리나라의 지식수준이면 거의 다 안다고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말씀을 듣지 않으면 재앙을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거룩하게 살기를 노력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룩하게 살지를 못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를 못합니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뜻은 많이있습니다.

 

 이런 뜻대로 못한다고 지옥 간다면 이 세상에는 천국 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삶에서 많은 부분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내가 말 하는 것 내가 행동 하는 것 내가 생각 하는 것 침상에서 하는 것 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다 말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우리는 부지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또 뻔히 알면서도 어기고 수도 없이 어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떠나가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치 않으면 버림을 받는 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갈 것이 아니요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 하셨는지를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은 분명히 구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구원을 얻느냐 못 얻느냐에 대한 문제가 그곳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버림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하나님의 뜻을 행치 못했느냐면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행치 못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법 경건하게 사는 것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은 우리가 못했습니다. 만약 이런 것들을 행해야 간다면 구원 받을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 하시는 버림을 받은 것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보겠습니다. 에베소서1:5절을 보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를 예정 하셔서 택한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하셨습니다.

 

 로마서8:28-30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부르시고 또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고 미리 정하셔서 그들을 의롭게 하시고 그들을 영화롭게 하사 끝까지 인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미리 정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성도에 대한 약속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히브리서6: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하나님의 약속의 뜻은 약속한 자들에게 기업을 주셔서 절대로 변치 않는 다는 것을 말씀 하셨는데 변치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정하시고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 하셔서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뜻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히브리서6장18절에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안심하고 들어 갈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에게, 그 뜻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에게 얻게 하셨는데 그 뜻을 어떻게 하면 얻어지는 가를 보겠습니다. 야고보서1:18절을 보면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낳은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말씀 하시는데 그 진리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모겠습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진리의 말씀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 하시는 우리를 낳은 진리의 말씀은 성경 전체를 말씀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그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씨가 되어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1:23-25절을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말씀의 씨를 통해서 낳았는데 그 씨는 복음의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너희에게 전한 말씀 곧 복음 이니라 그 복음이 씨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으로 우리는 새로 낳는 것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진리의 말씀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새로 탄생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통해 하신 약속은 변치 않습니다. 변치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복음의 말씀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어오면 우리가 거듭나고 거듭니면 틀림없이 천국 간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1;11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복음은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뜻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마태복음18:14절을 보면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를 찾으러 가셨습니다. 백 마리 중에서 한 마리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니까, 복음을 깨달은 사람들은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다고 믿고 있어야 하나님의 뜻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고도 잘못살면 잃어버린다고 말합니다. 잘못 한다고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은 사람은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노래합니다. 양을 잃어버리는 것은 목자 책임입니다 양 책임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내가 천국가고 지옥 가는 것이 나에게 달려 있는 줄을 압니다. 우리의 구원은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믿게 해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사야53:6-7절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제 길로 갔거늘.... 하나님께서 우리 양 무리의 죄악을 담당 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양과 같이 각기 제 길로 도망가지만 목자가 우리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윗도 양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양을 칠 때 사자들이 물고가면 사자의 입에서 양을 구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생명을 걸고 가서 양 새끼를 찾았습니다. 다윗이 양을 찾을 때 양이 힘이 있어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사자가 양을 공격 할 때는 무리가 같이 있을 때는 지켜보다가 떨어져 나온 양을 공격합니다. 이때 목자는 그 양을 사자에게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양이 자기발로 돌아온 것도 아니고 양이 사자를 이긴 것도 아닙니다 목자가 사자의 입에서 양을 구해낸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자의 입에서 스스로 힘을 길러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이 아무리 힘을 길러도 사자의 입에서 자기 스스로 나올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는 노래는 다윗보다 더 확실한 목자라는 것입니다. 다윗도 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양을 잃어버리시겠습니까? 이 소자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양이 된 것입니다 양이 된 후에는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목자가 양을 잘 돌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잃어 버려지지 않도록 목자께서 우리를 돌보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도망가려해도 목자가 나를 붙잡고 도망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목자가 확실하면 양이 도망가더라도 목자가 쫒아가서 양을 잡아서 끌고옵니다. 절대로 도망 못갑니다.

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끝까지 붙잡아 주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20:14절을 보면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설명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온 사람이나 먼저 온 사람에게나 동일하게 주시는 것이 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동일하게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깨끗하게 산 사람이나 더러운 사람이나 일을 적게 하거나 많이 하거나 동일  하게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로마서3:21-22절을 보면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먼저 온 자나 나중에 온자나 잘난 자나 못난 자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야만인이나 어떤 사람에게도 믿음을 통해서 주시는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는 자는 떠나가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반대로 생각하는 있는 사람은 복음이 없기 때문에 떠나가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확실한 사람은 부족한 사람에게도 천국을 주신다는 것을 확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확실치 않은 사람은 무엇을 잘못하면 안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차별 없이 예수를 믿음으로 주신다는 것인데 자기는 차별 있게 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다릅니다.

 

 요한복음6:38-40절을 보면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중에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다는 하나님의 뜻을 확신합니다.

 

 복음을 받았어도 내가 혹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과는 전혀 다른 생각입니다. 그 사람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치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거룩하게 삽니까? 항상 기뻐하며 삽니까? 쉬지않고 기도합니까? 범사에 감사합니까? 알고 행치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나는 죄를 안 짓고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십리를 동행합니까? 꾸어 달라고 하면 다 줍니까? 우리 사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내가 큰 죄를 안 짓고 사니까 죄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가 살아감으로 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에게 범죄를 제공도하고 모르고도 짓고 있습니다. 여러분 쉬지 않고 기도합니까? 세상 끝까지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해야 하지만 알면서도 못하고 때론 내 몸이 피곤해서 귀찮아서 여러 가지 핑계로 못합니다. 법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는데 이 모든 것은 율법적인 것에 해당됩니다.

 

 이 율법적인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에서 한 사람도 행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은혜 받은 자로서의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물론 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힘써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율법적은 뜻으로는 한사람도 구원 받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믿음을 통해서 구원하십니다. 믿음을 통해서 영생을 얻고 구원받을 사람을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 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귀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맡겨지면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맡겨진 사람이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목자에게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맡겨진 자가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사람들은 잃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이 있으면 잃어버린다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은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약속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중요합니다.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사람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잃어버립니다.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위기의 환경에서도 절대로 안 잃어버린다고 믿는 사람은 복음이 확실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잘못하면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라면 혹시라도 잃어버리시겠습니까? 혹시라도 잃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세상 목자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0:28-29절을 보면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빼앗긴다면 그 아버지는 무능한 아버지입니다. 세상 적으로 생각해도 아버지가 옆에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데리고 가려면 아버지가 그냥 놔두겠습니까? 혹여 우리가 모르고 다른 사람을 따라 간다고 할지라도 아버지는 우리를 붙들고 자기집으로 데리고갑니다.

 

 요한복음5:24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구속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내가 아버지 손에 붙들려 있는데 아버지가 잃어버린다면 그 아버지는 무능한 아버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잃어버린다고 말씀하신대로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율법적인 요구가 아니고 구원에 관한 약속을 믿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뜻은 완전히 행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복음이 있는 사람은 나는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 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깨닫기 전에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행하여도 늘 한쪽 마음에 불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를 안 믿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더 열심히 행하면서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율법적인 요구를 더 많이 이루려고 애를 씁니다. 저도 신학을 공부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 같은 사람이 신학을 한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이 안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구원은 막연히 그래도 신앙생활 하니까 구원해 주시겠지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한다니까 그래도 조금 더 애를 썼습니다. 그 후에 복음을 깨닫고 주금 더 빨리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만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알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지요. 사람들은 복음을 말씀드리고 천국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면 제 멋대로 사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하나만 아는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를 받은 자로 감사한 자로 살아갑니다. 예전에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고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감사함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과 감사함으로 은혜 받은 자로 지키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잘 지키겠습니까? 은혜 받은 자가 더 잘 지킵니다 지옥갈까 봐서 주인에게 쫒겨날까 봐서 지키는 것이 아니고 은혜 받은 자로 감사함으로 더 잘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이 처럼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아무런 대가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내가 혹 죄를 범할지라도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기에 더 조심 하는 것 이지요 이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법을 못 지키더라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마태복음7:23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고 그다음에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10:32-33절을 보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하나님 앞에서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시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시인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일평생의 죄를 다 짊어 진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이 전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부만 받아들입니다. 그 일부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많이합니다. 그 말을 생각하고 내가 최선을 다하면 내가 50%정도 하고 나머지 50%는 예수님이 채워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사람은 50%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어느 정도 힘써 하면 예수님께서 나머지는 채워 주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나머지를 채워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전부를 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시인한다는 말은 100%받아들이는 것을 시인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시인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지 않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100%받아들이지 않으면 시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을 폄하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완전한 믿음을 모르기에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 플러스 내 착한 행실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1:21절을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를 죄에서 건지실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내 노력이나 내 착한 행실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우리가 잘하고 최선을 다하면 우리의 부족한 것을 채워 주신다고 말 하는데 그 말이 참 좋게 들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고 최선을 다하면 그 나머지를 채워 주신다는 것만 압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일부가 아닌 전부를 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시편25:7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선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의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은 주님의 선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부족한 것을 보태 달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선하심으로 해 달라고 하는 것이 100%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로마서5:8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돌아와서 열심히 신앙생활 할 때가 아니라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죄인인 그 상태로 있을 때 독생자를 보내 주셔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로마서5:9절을 보면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이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죄가 없을 때가 아니라 죄 있는 그 상태로 된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요한복음 3장16절을 믿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저를 믿는 자 마다입니다. 저를 믿고 무엇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극치의 사랑입니다. 저를 믿고 무엇을 잘하면 구원을 받고 못하면 구원을 못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 차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잘하는 사람이나 못하는 사람이나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다 할 수 없기에 한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극히 귀한 진주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으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독생자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안 받아 들이는 것은 엄청나게 큰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7:23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가라 불법이 무엇입니까? 법을 안 지키는 것이죠 불법은 법을 안 지키는 것입니다. 법을 안 지킨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법을 안 지킨 사람들아 떠나가라 했다고 이것을 율법을 안 지킨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법을 못 지켜서 떠나가라면 살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갈라디아서2:16절을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는데 법을 지켜서 어떻게 갈수가 있겠습니까?

 

 로마서3:19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든 백성의 입을 막고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의 요구는 율법을 지키라는 것인데 율법을 못 지키니까 입을 막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율법을 지켰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불법을 말한다면 우리는 입을 막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디도서2:14절을 보면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율법적인 모든 불법은 예수님이 자기를 주심으로 우리를 구속 하셨습니다. 율법적인 불법에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로 그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

 

 히브리서10:17절을 보면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 불법을 기억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는 것이 불법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 불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억지 않는다고 하신 약속을 불신하는 진짜 불법을 범하는 사람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누구를 말씀 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의 믿지 않는 자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의 일을 한 것이 왜 불법이냐고 반문 한다면  요한복음 17:3절 영생은 곧 한 분이신 참 하나님과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 6 :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12 :44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고린도후서6:14-15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밸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불법입니다. 믿지 않는 것이 불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심령이 어두움입니다. 우리는 율법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다 행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불법을 늘 행하면서 살수 밖에 없습니다. 신약 성경은 성전이 무너진 후 70년부터 100년 사이에 기록 된 것입니다. 하기 좋은 대로 주여라고 부르다가는 사자밥이나 죽음을 각오하여야 주여!라고 부를 자격이 있던 시대에 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불법을 다 짊어지시고 그 분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법을 우리는 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안에서 복음의 진리가운데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수고와 짐을 다 가져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시는 큰 은혜에 더욱 감사하시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담대한 믿음으로 요동치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마지막날까지 인도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가좋다오/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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