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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하는 장인어르신께

힘찬 발걸음 2011. 6. 9. 08:59

 

평안하신지요.

요즘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져서 건강은 괜찮으신지 걱정이 되는군요.

 

며칠 전에 아내가 어르신 댁에 방문을 했었지요.

아내가 제가 제사에 대하여 쓴 글을 읽어드리고 성경을 펴서 제사의 부당성을 설명하자 뚫어지게 성경을 보시면서 확인하시고 이야기를 다 들으신 후에 이제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고 힘없이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서 듣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물론 아주 잘하신 결정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결정하시는 과정에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생각하니 저도 가슴이 아려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르신은 참으로 효성이 지극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계실 때에도 항상 부모님을 극진하게 대하셨고 원치 않게 미국으로 가게 되신 후에도 어려우신 상황에서도 꾸준히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물질적인 부분을 담당하셨고 그래서 귀국하시기 몇 년 전에 부모님이 한 분씩 돌아가셨을 때 부모님의 임종을 보지 못한 죄인이라고 몹시 괴로워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귀국하신 후에도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과 죄책감으로 번민하다가 제사를 드리기로 작정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그러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생각하니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파 오는 것입니다.

 

아마 이 일로 기독교에 대한 오해는 없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많고 따뜻하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거칠고 사나운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은 따뜻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에 대한 그러한 안타까운 애정의 표현이 제한되면서 기독교는 너무 차가운 종교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참다운 사랑은 무엇인가? 참다운 부모 사랑, 효도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잠시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외출을 하다가 집으로 오면서 사랑스러운 아들이 생각나서 바나나를 한 바구니 사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어린 아들이 바나나를 맛있게 먹으면서 아주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들이 바나나를 맛있게 먹고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바나나만을 좋아하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바나나와 그 맛에 대해서는 인식하지만 바나나를 사 준 어머니의 마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래도 어머니는 기뻐할 것입니다. 자기가 사 준 바나나를 맛있게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서운하기도 하겠지요. 언제쯤 자녀가 좀 더 자라서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줄까 하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는 바나나보다 좀 더 좋은 사랑의 교제를 서로 나눌 수 있으니까요.

 

부모님은 분명히 우리 모두의 은인이며 희생자이며 사랑을 베푼 분들이십니다.

그러나 그 부모님을 우리에게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님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사랑하도록 예비하신 진정한 부모님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그 배후에 계신 진정한 부모님을 생각하고 그 분께 효도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부모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우리의 창조자가 아닙니다. 우리도 자식을 낳지만 우리도 창조주가 아닙니다. 자식을 자기가 낳기는 했으나 자신이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자신이 자식을 만들었다면 생김새나 성품이나 모든 것들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자신의 배에서 나온 자식이라고 해도 생각도 틀리고 마음도 다르고 살아가는 가치관이나 목적 등 모든 것이 다르며 그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모는 단지 하나의 도구일 뿐이지 자신이 아이를 창조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효도에 대한 오해는 하나의 도구에 속하는 육신의 부모를 마치 주인인 것처럼 오해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혈육이나 부모를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연히 존경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며 섬겨야 합니다.

 

하지만 부모님 자체보다 그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더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하며 부모를 사랑하고 섬길 때에도 그 진정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과 법을 따라 사랑하고 효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젊었을 때 열심히 수고하여 자식을 낳고, 기르고.. 그렇게 노년이 되었는데 막상 힘들게 기른 자식은 부모에 대해서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혼자 큰 양 그저 귀찮게 여기고 짐으로 여기는 그러한 경향은 이 시대의 한 특성입니다. 그러한 일을 겪으면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참으로 삶이, 지나간 세월이 허무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일을 겪고 있는 분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평생을 교회에 다니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고독과 그 마음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저 자신의 소원이나 문제가 있을 때 하소연을 하는 것 정도가 신앙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게 진정한 효도를 알지 못하는 이 땅의 대부분의 자녀들 때문에 주님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고 고독합니다. 저의 경우는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은 󰡒누가 나의 마음을 알겠느냐.. 나는 고독하다. 나는 고독하다..󰡓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출세를 하면 그게 성공인줄 아는 대부분의 신자들은 주님의 마음에까지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지 주님을,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을 신앙이라 믿고 있기에 주님은 고독하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보면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교활한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그들이 진정한 신앙, 진정한 복음에 대해서 잘 모르고 단순히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며 아직 육체로 살고 있고 영혼의 눈이 뜨여져 진정한 주님의 마음에까지 이르는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용어에 거듭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듭남.. 중생이라고도 하지요.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전에는 육체로 살았으나 이제는 영으로, 영혼으로 산다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썩어질 것들이 크게 보였고 대단하게 여겨졌고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었으나 이제는 영혼의 눈이 뜨여져서 영원한 세계를 알게 되고 그리고 그 영원을 느끼는 영혼의 감각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생을 하게 되면 점차 영혼이 깨어나서 육체 중심의 삶, 눈에 보이는 것을 좇는 삶을 살지 않고 이 세상을 초월하게 되며 이 세상의 일로 근심하거나 즐거워하거나 하지 않게 됩니다.

재물이 많아도 거기에 관심이 없고 입을 것이 없어도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명예나 외적 성취에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사고를 당하거나 어려움을 겪어도 ‘아.. 그렇군요..’하고 초연합니다.

전쟁이 나도 ‘아.. 그렇군요..’ 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누가 모함하고 미워해도 ‘아. 그렇군요..’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중생하고 거듭난 사람의 삶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주님의 사랑의 손안에 있음을 의식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겪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영혼이 깨어날수록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일시적이고 썩을 것이며 우리는 영혼을 가진 영원한 존재이고 이 영혼의 발전을 위해서 이 땅에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초월과 자유한 삶은 매정하고 차가운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이기심과 명예욕이나 소유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따뜻하게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것이지요.

 

많은 경우에 사랑으로 인하여 근심을 하고 싸움을 하고..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육체에서 나오는 집착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그러한 육체의 시각에서 벗어날 때 진정 자유롭고 행복한 삶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어르신은 참으로 양심적이고 떳떳한 삶을 살아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따라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섬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모든 섬김과 효도와 사랑의 마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효도를 발견하시고 그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가지게 되실 것을 기대합니다.

 

어르신은 연세가 많으시면서도 탐구력이 대단하셔서 조금만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바로 영어 콘사이스를 찾으시고 그 의미를 아시려고 노력하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열정을 축복하셔서 앞으로 진리의 문을 열어주시고 영혼의 세계를 열어주셔서 참 신앙의 세계를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부디 사랑의 주님께서 어르신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평안과 기쁨으로 채워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일간에 찾아뵙겠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십시오.

 

사위 정원 드림.

 

2003. 9. 24

 

 

[일상에서 경험하는 주님의 은혜] 중에서..

출처 : 정원목사 독자 모임
글쓴이 : 홍윤미 전도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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