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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복과 축복은 소중합니다/창28:10~22/2010년 2월 7일 주일설교

힘찬 발걸음 2010. 2. 8. 14:34

복과 축복은 소중합니다.

창28:10~22

2010년 2월 7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예배 설교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설교:

제가 얼마 전 아는 목사님의 아들이 결혼을 하기에 예식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주례하는 목사님이 신랑신부를 축하하며 축복기도를 하는데 그 표현이 정말 답답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한 가정을 이룬 신랑신부에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신랑이 아버지 목사님보다 하나님의 더 많은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고 신랑 자손 역시 신랑보다 더 큰 축복을 받는 후손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잘 아는 신학교 교수님이신데 ‘축복’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분인데 하나님이 축복해 달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祝福(축복)은 사람이 사람에게 복을 기원할 때 사용하는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福(복)을 달라고 기도할 때는 ‘복을 주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축복’이라는 글자를 잘 보세요.

祝(축)자는 빌 祝자 복자는 복 福자입니다.

그러니 목사가 “여러분을 祝福(축복)합니다” 하는 말은 말이 되어도 하나님께 “우리를 축복하여 주옵소서”는 말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복’과 ‘축복’을 혼돈하여 사용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기도 시간에 복과 축복을 분간하지 않고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을 표현할 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셨다’ 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때 “축복하여 주옵소서” 하는 말은 잘못된 말이고 “복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은 표현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축복하였다’는 말은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복을 빌었다는 뜻입니다. 올바른 표현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시여 제 자식에게 복을 주옵소서’ 또는 ‘하나님 저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제자식을 축복하여 주옵소서는 잘못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福(복)과 祝福(축복)을 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소중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는 축복도 매우 소중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가 복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만이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찬송가 1장이 뭔가요?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

찬송가 28장에도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아멘?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십니다. 창세기 12장 2절을 보세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했습니다. 옛날 성경에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했는데 새로 개정한 성경은 ‘복이 될지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이름을 창대케 하시고 하나님이 복이 되도록 만드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또 창세기 1:28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했습니다. 하나님만이 복을 주시는 분인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선물은 福(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복을 누리며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복의 하나님이시고 그 복을 주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잘 보세요. 성경의 첫 책 창세기 1장에 복을 말씀하시고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에서도 복을 말씀합니다.

시편에서도 복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산상보훈에서도 첫째가 복을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을 창조하실 때 복을 주시려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영육 간에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도 안타깝게 사람은 헛된 우상에게 복을 구합니다. 또 사람이 복을 주는 줄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복의 주인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그 통로로 쓰임을 받을 뿐입니다.

 

성경에 복을 누린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그런 복을 누린 이유는 하나님이 복의 근원임을 확신했고 그 복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복은 사모하는 자의 것입니다. 아멘?

 

대표적인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 형을 피해 도망을 칩니다. 야곱이 행한 짓은 아주 야비하기까지 합니다. 형의 장자권을 빼앗으려고 형의 약점을 이용해 팥죽 한 그릇과 바꿉니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님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받을 복을 가로챕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야곱에게 속은 줄 알았던 이삭은 그가 행한 축복을 취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삭 같았으면 어찌 했을까요? 분명 아들에게 속았습니다. 괴씸하잖아요. 그러면 “하나님 좀 전에 했던 축복 취소합니다.” 그리고 에서를 다시 축복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축복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그 속에 복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복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란 말이 그것입니다. 하늘의 복은 사모하며 노력하는 자의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지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후의 우리의 복은 사모하는 자가 누리게 됩니다.

우는 아이가 한번이라도 젖을 더 얻어먹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의 소중함을 알고 사모하는 백성이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복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사람은 그 복의 통로에 불과함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2. 주시는 복과 기대하는 복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은 다 좋은 줄 압니다. 한국인과 중국인들은 유독 복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福(복)자를 유난이 많이 사용합니다. 제 집사람 이름도 福姬(복희)입니다.

저는 복있는 사람과 산단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복은 A라는 것인데 하나님은 B를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스데반처럼 설교 한 번 멋지게 하고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세례요한처럼 목베여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저주받아 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정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려면 우리가 십자가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려면 아브라함처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아멘을 안 합니까? 그 이유를 알지요.

 

오늘 본문의 야곱을 보세요.

분명 아버지의 축복을 통해 하나님께 엄청난 약속의 복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당하는 현실은 살기위해 도망치는 것입니다. 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보입니다. 아비지의 축복을 받았는데 형이 그를 죽이려 합니다.

결국 외삼촌 집으로 피신을 하여 자그마치 20년 동안 수없이 많은 고생을 합니다. 그래도 그게 복을 누린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당대에 내앞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안 이루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먼훗날에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도 430년 후에 이루어진 복을 약속으로 받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을 보세요. 다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어떻게요? 그들이 기다렸던 복은 현세에 것으로는 나타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들 후대에 이루어졌고 하늘나라에서 누린 복도 많습니다.

그러기에 현세만을 보고 복을 받았다 복을 받지 못했다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봐야 합니다. 그날이 우리의 모든 것을 들어내는 날입니다. 아멘?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우리가 원하는 복이 다르더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가 기대한 복은 없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면 그것이 진짜 복이고 최고의 복인 것입니다.

사55:8~9절을 보세요.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러기에 가짜 복을 복이라 여기지 마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복을 사모하고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사람의 축복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복을 누리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러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직접 약속으로 받는 것도 중요하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축복을 받는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이 복을 누린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복을 받은 사람도 있으나 많은 경우 사람의 축복을 통해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누린 것을 보세요.

그는 소돔성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다가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그가 누굽니까? 성경에는 그는 신비스러운 존재인데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히브리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창14장 19~20절을 보세요.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복을 누립니다. 아브라함이 너무 감사해서 십일조를 드립니다.

창세기12장 3절에서도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셨습니다.

내가 남에게 축복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삭도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받았고 야곱도 아버지 이삭에게 받았고, 요셉도 그 아버지 야곱에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주변 사람에게 축복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많은 사람을 축복했습니다.

특히 막10:16절을 보면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했습니다.

 

또한 나도 축복을 남에게 받으려고만 말고 남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남을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그 복이 그대로 임하게 됩니다. 동시에 내가 남을 저주하면 그것 또한 그대로 됩니다. 그러기에 남에게 욕먹을 짓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통신호를 어겨서 달려가면 다른 차들이 욕을 합니다. 그들의 욕이 내게 저주로 임하는 것입니다.

 

야곱을 보세요. 야곱은 축복의 열망 때문에 몸부림치던 사람입니다.

얼마나 축복을 사모했든지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축복을 받고, 나중에 얍복강에서 천사를 만나 씨름할 때도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때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고 축복을 받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가 나이 많아 죽기 직전에 열 두 아들을 불러놓고 그들의 행위대로 축복을 합니다.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았기에 자식을 축복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귀하게 여기시기 바라고 그리고 사람들이 베푸는 축복도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6장27~28절을 보세요.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어서 38절에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내 원수, 미워하는 자, 모욕하고 저주하는 자까지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나 하나님의 복을 믿는 사람이라면 능히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왜요? 주님이 나를 그렇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눅6장 31절“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하셨던 것입니다.

 

4. 복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창27장 28~29절을 보면 야곱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그리고는 도망을 칩니다. 그때 받은 축복이 먼훗날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아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복을 약속받습니다.

하나님이 벧엘 들판에서 잠자는 야곱에게 직접 약속하십니다.

오늘 본문 13~15절을 보세요.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것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복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신기하지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야곱이 누린 복이 뭡니까?

1)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셨습니다.

20년 동안 하나님은 그를 지키셨고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속임수에서도 보호하고 밤낮으로 양을 칠 때도 보호하셨습니다.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올 때 형 ‘에서’의 무서운 칼날에서도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도 보호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는 빈손으로 외삼촌 집으로 갔으나 돌아올 때는 巨富(거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동분서주 뛰어다닌다고 다 주시는 것 아닙니다. 물질의 복 받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주시는 분을 온전히 섬기고 그분의 복을 귀히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3)자녀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는 약속대로 자손들이 번성하였습니다. 12명의 아들과 딸 한명, 모두 13명의 자녀입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 애굽에서 나올 때는 장정만 60만 명이고 여자와 어린아이 노인까지 합하면 최소 200만 명이다. 더욱이 그 자녀 중 요셉은 대애굽 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요즘 말로 말하면 내 자식이 훗날에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복을 붙잡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늘 주변의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으셔야 합니다. 특히 부모의 축복과 목회자의 축복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복과 축복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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