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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마서(26)-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롬 12:1-2)

힘찬 발걸음 2010. 11. 5. 12:04
로마서(26)-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롬 12:1-2)

로마서의 전체적인 구조는 이렇습니다. 1장에서 11장까지는 복음에 대한 것입니다. 12장부터 16장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쓴 서신서들의 공통적인 구조입니다. 앞에는 기독교 핵심인 복음, 교리적인 내용이 나오고 뒤에는 생활 윤리가 나옵니다. 오늘부터는 12장을 살펴보게 되니까 그리스도인의 생활 윤리에 대해서 다루게 됩니다.

롬12장 1절을 보면 ‘그러므로’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롬1장부터 11장까지 다루었던 복음의 내용을 총괄해볼 때’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고 믿음으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이런 뜻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12장부터 16장까지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장 1,2절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요약적으로 함축하는 교훈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을 요약하면 ‘구원의 은혜를 입었으니 날마다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 다른 말로 하면 ‘날마다 거룩한 삶의 예배를 드리라’입니다.

1. 산 제사란 무엇인가요?

구약시대의 제사와 방법과 신약시대인 지금의 제사 방법은 다릅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을 죽여서 피는 제단에 뿌려서 바쳤고, 몸은 태워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죽은 제물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 이상 피를 흘려 죽은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되사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히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이제 우리가 드리는 제사는 산 제사입니다.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살아 있는 내 자신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내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혼과 육체 모두를 의미합니다.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신약의 제사는 삶의 예배입니다. 예배가 삶이고 삶이 곧 예배인 것입니다. 그도 그런 것이 구약 시대에는 성전이 따로 있었고, 제사장이 따로 있었고, 제물도 따로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곧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내가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제물은 내 자신입니다. 내 마음과 인격과 삶입니다. 그러므로 산 제사란 내 영혼과 육체와 내 인격과 삶 전체를 드리는 삶의 제사요 삶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2. 누가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나요?

누가 산 제사 곧 삶의 예배를 드릴 수 있나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산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살아 있습니다.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살아 있습니다. 또한 우리 육체도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값을 주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영혼과 육체를 주께 드려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산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어제 죄를 짓고 더럽혀졌어도 오늘 다시 회개하고 산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목욕한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발 씻는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언제든지 정결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어서 거룩하게 되고, 산 제사 곧 삶의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3. 어떻게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1) 이 세대를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세상의 가치관과 풍조를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말씀을 보면 세상의 가치관을 세 가지로 요약해 놓았습니다. 육신의 정욕은 절제되지 않는 육체의 욕구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대로 좇아가는 것입니다. 재물을 보고 탐욕을 갖거나 여자의 육체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은 세상 명예와 자랑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이 세 가지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경계해야 할 요즘 세상의 두드러진 두 가지 문제점은 성적인 타락과 가정의 파괴입니다. 우리나라 최대 흥행 영화가 된 왕의 남자는 교묘하게 동성애를 깔고 있습니다. 금년 미국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영화도 동성애를 주제로 하였습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서는 네티즌들의 조회 건수를 올리려고 선정적인 기사들과 선정적인 여자들의 사진을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올리곤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려면 이 세대의 성적인 타락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심각한 이 세대의 문제점은 가정의 파괴입니다. 너무나 쉽게 이혼을 합니다. 단지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이혼하고 맙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더 이상 결혼 생활이 지속될 수 없어서 이혼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혼은 서로 용납하고 인내하지 못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려면 반드시 이 세대를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음란한 세상 문화가 내 삶이나 가정에 들어와 있다면 몰아내야 합니다. 또한 부부 간에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려는 마귀의 간교한 술책도 몰아내야 합니다. 부부간에 자존심을 버리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를 시도해야 합니다. 또한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에 이미 새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날마다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두 번째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반드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새 생명이 되었기 때문에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우리는 날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날마다 새롭게 변화가 될 수 있나요? 내가 결심을 한다고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과 의지로 새롭게 변화될 수 없습니다. 마치 자연 현상과 똑 같습니다. 봄이 되고 새 잎이 돋아났습니다. 그 새 잎은 동녘에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받으면서 날마다 날마다 자라갑니다. 봄이 되었구나 싶은데 잠시 지나보면 주변의 산들이 푸르른 신록으로 우거집니다.

이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아침 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침마다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날마다 새롭게 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시143:8)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하루를 주님께 맡기는 시간을 갖지 않고는 절대로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하루에 단 5분으로 시작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가능하면 새벽기도가 가장 좋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은혜는 새벽 기도 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정 할 수가 없다면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단 5-10분이라도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아침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 받지 않고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결국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말씀에 세 가지 기준이 나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것입니다. 셋째 온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기준을 마음에 새기면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은 매우 성숙한 신앙의 단계입니다.

집안 일을 하거나 직장 일을 하거나 우리는 하루를 정신없이 보낼 때가 있습니다. 만약 집에서 청소와 빨래를 하면서 정말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다면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빨리 끝내고 커피를 마시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또는 직장에서 “어서 근무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퇴근하면 어서 집에 가서 게임을 하며 푹 쉬어야지.”

그러나 삶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다릅니다. 청소와 빨래를 하면서 집에 찬송을 틀어놓고 찬송을 부르면서 때로는 계속 기도를 하면서 즐겁게 일합니다. 또 직장에서 비록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긴장해야 하고 피곤한 일이지만 순간 순간 주님께 의지하고 지혜를 얻고 미소를 지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도전의식과 성취감을 누리면서 일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것을 좇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삶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때로는 사소한 일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했습니다. 삼하23:15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은 블레셋의 수중에 넘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고향 우물물이 먹고 싶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옆에서 듣고 있던 부하 세 명이 용맹하게 적진을 뚫고 들어가서 베들레헴 우물에서 물을 한 그릇 떠왔습니다.

다윗은 생명을 걸고 떠 온 그 물을 받으면서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부하를 칭찬하고 상을 주면서 맛있게 마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여호와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니이다”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다윗은 실로 매사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좇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삶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시골 교회에서 어떤 나이 든 성도님 한 분이 매일 매일 빠지지 않고 새벽 기도회를 다녔습니다. 이 분은 항상 가장 오래 동안 남아서 기도를 했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목사님과 자신의 가정을 놓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슴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남의 집 울타리에 호박 넝쿨이 보였습니다. 된장찌개 끓여먹기 딱 좋은 탐스런 호박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무도 안 보나 주위를 살핀 후에 얼른 호박을 따서 품에 넣었습니다. 삶의 예배가 이뤄지지 않은 모습입니다. 신앙과 삶이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세탁소를 하실 때 너무나 주문량이 넘쳐서 일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힘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영업이 잘 되었을까요? 그 분은 단돈 천 원짜리 수선을 맡아도 천 원짜리 만큼 일하지 않고 오천 원짜리 정성으로 수선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 번 고객이 된 사람들은 멀리 이사를 가도 찾아와서 맡기더라는 것입니다. 돈 벌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무슨 일을 하든지 범사에 주께 하듯 하는 것이라면 삶의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예배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제사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삶의 예배입니다. 주일 예배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일 예배만 예배가 아닙니다. 날마다 내 삶으로 드리는 삶의 예배가 있습니다. 삶의 예배가 이뤄질 때 주일 예배를 주님께서 더욱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일 예배를 주목하시지만 주일 예배가 더욱 은혜롭고 축복된 예배가 되려면 삶의 예배가 드려져야 합니다. 매일매일 삶의 예배가 온전히 드려졌다면 주일 예배는 너무나 감격되고 은혜로운 예배가 될 것입니다. 서로 마치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산 제사를 위해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기억합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합시다.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날마다 아침마다 하나님과의 교제시간을 가지는지 돌아봅시다. 또한 공부든 집안 가사일이든 직장일이든 그 일을 하면서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는 마음으로 합시다. 순간순간 기도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합시다. 그 이유는 그것이 곧 삶의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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