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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요20:19~23/ 2010년 4월 4일 부활절 설교

힘찬 발걸음 2010. 4. 5. 11:41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

요20:19~23

2010년 4월 4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부활절 설교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설교:

우리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옆 사람에게 “우리 주님 부활하셨습니다.” 하고 인사합시다.

 

여러분은 감당하기 어려움이 닥치면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아마도 여러분 중에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고 계십니까?

그냥 혼자 고민합니까?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합니까? 아마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이는 혼자 고민하다 우울증에 빠져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을 보셔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셨나요?

기도하셨습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압니다. 그런데 막상 견디기 힘든 일이 닥치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저 힘들어하고 두려워 떨며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왜일까요? 평상시 기도 훈련이 안되어 그렇습니다. 그러니 기도할 생각조차도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들끼리 모여 있습니다. 왜요?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토록 믿고 따르던 선생님이 십자가의 무서운 극형을 당하시고 죽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겪는 고통과 두려움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몇 명의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갔다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흩어졌던 제자들이 한두 사람씩 모여듭니다. 오는 사람마다 집 주변을 계속 살피다가 슬그머니 들어갑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지친 모습이 역력합니다. 두려우니 문을 굳게 걸어 잠급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려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소망과 의심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들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는 했지만 아직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대화를 들어볼까요?

“아~주님의 시체가 도둑을 맞았다고 하던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아니야... 주님이 다시 사신 것을 마리아가 보았대!.”

“맞어,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고 했잖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보게 주님이 살아계실 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잖아. 정말 살아나셨나봐”

그들은 부활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제자들의 마음이 여간 뒤숭숭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때 그곳에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할렐루야!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찾아 오셔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부탁도 아니고 권면도 아닌 명령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절을 맞아하여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을 몇 가지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1. 평강을 누리라 하십니다.

본문19절을 보세요.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의 평강”입니다. 그런데 ‘평강’이라는 것이 누리겠다고 다짐하고 이를 악문다고 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나타나신 예수님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입니다.

 

주님은 문이 잠겨 있으나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몸으로 순간 이동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몸을 갖고 있으나 주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실 수 있는 새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이 믿음이 없는 것들아 왜 두려워하느냐” 하며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의 연약함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찾아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샬롬” 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물론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이 통상적으로 쓰는 인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안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에게는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이 반가운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못 자국이 난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제자들은 자기들 앞에 서신 분이 다시 사신 주님인 것을 알았고 아마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쁨을 누렸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무력하게 죽은 줄 알았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평강은 소유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평안, 그 평강은 주님을 만난 사람만이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평강이 누려지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이 제자들이 겪고 있는 두려움이나 절망을 경험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모양과 형태가 다르나 지금도 힘들어 한숨 쉬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믿지 않는 친구는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 같은데, 예수 믿는 나는 왜 일이 안 풀리는 거야?”

“남들은 기도 응답 받았다고 난리인데 왜 내 기도는 응답이 없는 거야?”

“과연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걸까?”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나?”

믿음에 회의가 생기고 불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불신앙을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삶에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십니다.

 

그 말씀의 뜻이 뭘까요?

네가 믿는 예수는 죽은 예수가 아니고 살아있는 예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깨닫고 평안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낙심하고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경우와 같이 육신으로 찾아오시지는 않습니다.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게 하십니다.

주님이 부활하여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때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아멘?

 

2. 복음을 들고 가라 하십니다.

본문 21절을 보세요.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또 다시 말씀하십니다.

19절에도 말씀하시고 21절에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말씀하신 평강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막중한 사명을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가라’는 것입니다. Mission입니다.

이 명령과 사명은 비단 12제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거룩한 명령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16:14절을 보세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가라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사역에 우리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 1장8절에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하십니다. ‘이르러’입니다. 이것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 ‘예수의 메시아 되심과 구원의 주되심’을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23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해하지 마세요. 제자들이 죄를 용서하면 하나님도 용서하고, 제자들이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죄 용서의 권세가 제자들에게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들이 전하는 복음과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를 믿으면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거절하여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그들의 죄가 그대로 있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죄 용서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미션이 오늘 우리에게, 그리고 교회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역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어느 기관도 이 사역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명은 매우 막중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에 우리와 우리 교회가 그 사명을 감당하길 소원합니다.

 

3. 성령을 받으라 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자기를 보고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세상을 향하여 나가서 주님의 부활을 전할 사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보내기 전에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22절을 보세요.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하십니다.

 

성령은 인간이 창조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다른 동물에게는 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받은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의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여기 ‘생기’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있는 영, 즉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만이 영혼이 있고 인간만이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므로 이 성령이 인간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 속죄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는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면서 성령이 임할 것을 약속하셨고 그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 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4: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라는 단어는 ‘paraclatos’라는 헬라말의 번역인데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이지만 <곁에 있도록 부름 받은 이> <변호사> <상담자> <보호자>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 성령이 왜 우리에게 필요할까요? 왜 받으라 명령하실까요?

성령님은 항상 성도들과 함께 하시면서 사명을 감당하게 도와주십니다.

성령을 통해 능력을 받고 성령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성령의 능력을 받아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성령이 믿는 자들에게 최초로 임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시자마자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주체가 예수님 자신임을 밝히십니다.

결국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제자들은 변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신뢰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그들은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이 성령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을 이미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요?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영접하고 예수를 믿으면 주님은 우리에게 이 놀라운 성령을 부어 주셔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 임재 하여 계시는데 그 성령이 우리의 전인격을 지배하도록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이 나를 충만하도록 하려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은혜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은혜 받은 자들과 함께 있으면 은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신앙인들의 공동체입니다. 제자들도 소식을 듣고 은혜의 자리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제자들과 자주 모였던 장소였을 것입니다. 은혜의 자리로 나오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는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나누고 성도의 교제를 나눌 때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습니다.

러기에 힘들고 어려울 때, 그리고 믿음이 약해지고 낙심될 때 얼른 은혜의 자리로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지 않고 반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의논하거나 불신자들에게 상담을 해본다면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결론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경우라도 예배의 자리를 빼앗기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단 원수 마귀는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예배에 나가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으로 역사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말한 것처럼 사단이 제일 강하게 역사하는 시간은 주일 아침이라고 하잖습니까? 동감하시면 아멘을 하세요.

 

2)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을 만나는 게 당연할지 모르나 이미 승천하고 나신 지금은 그분을 어떻게 만납니까?

눈으로 예수를 직접 보고 귀로 그의 말을 직접 들으면 신앙생활 잘 할 텐데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그가 하신 기사와 이적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앞장서서 예수를 배척하였습니다. 오히려 무리를 선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20장 29절에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도마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육안으로 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성도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멘?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빈 무덤을 직접 보거나 부활이 주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대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보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있습니다.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두 가지입니다. 1)예수가 바로 메시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며, 2)믿는 자들이 그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씌어졌습니다. 아멘?

그러기에 성경을 통하여 믿는 것이 가장 올바른 신앙인의 길입니다.

오직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말씀대로 행할 때 우리의 삶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3)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사역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역은 여기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부활 신앙을 심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것과 증거하는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우리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여 기쁜 마음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3:15에 사도들의 고백을 보세요.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시던 새벽,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은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자기들의 귀로 듣고 부활하신 주님을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또 입으로 전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우리만 구원받아 부활에 참여하게 된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이 진리를 믿고 은혜를 받도록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먼저 믿게 하신 주님의 뜻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며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을 힘입어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부활절에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명령입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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